문[文]


투명한 물방울이 고여갔다. 그것은 뒤로 등 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리고 있지 못해 그대로 비쳐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크기만큼은 왜곡시킬 수 있었다. 물방울을 바라보던 나의 시계(視界)로 판단하건대, 그 왜곡 된 풍경을 아름다웠다. 잊혀지지 않을, 그 조그마한 바다 속 빛의 일렁거림. 그것도 또한 반짝이는 별 빛. 평생 눈에 닿지 못할 우주 그 속에서, 외롭다며 비명 지르기에는 몇 겹이고 겹쳐져 반짝이고 있는 세계가 워낙에 광활한 어둠 한 가운데. 물방울이 점점 더 커져갔다. 의지를 지니고 진동을 일으키듯 - 원하는 대로 등 진 세계를 비춰 보여주려는 듯 -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호소가 계속 되었다. 오랫동안. 사방을 향해. 정해진 수신자는 없었으리라. 발신자를 인격체로 부르는 것은 이상했다. 하지만..

거미는 양산 아래에서 그늘에 숨어 말했다. " '사랑은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노래 가사가 있잖아? 그치만 난 그렇게 생각 안해. 미련이 남았을 때 사랑으로 잊을 수 있는 거야. 미련은 사랑이 전제 조건이 아닐 수 있거든. 굳이 말하자면, 사랑이 타오르다 식어 남은 검은 재에서 마치 온기가 아직 느껴지는 것 같아 나로서는 차마 치우지 못하는 것, 그 정도겠지. 하지만 여전히 사랑이 남아있다면, 안타깝게도 다른 사랑으로는 잊을 수 없어. 그건 단념을 할 수 있는게 아냐. 사랑은 능동적인 요소거든. 이미 '나'는 방향을 정하고 고민을 정리해서 각오를 다지고 가야할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가고 있는게 사랑이라 할진데, 어떻게 그러는 중에 다른 사랑을 준비하려 할 수 있겠어. 하지만 만약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었..

" 내가 너를 살릴 이유를 찾았다. " 그런 생각이 들면, 지주는 어떻게든 너를 살려내리라 다짐하게 된다. 전력으로 살아가면 내 주변이 빛나고 예뻐 보인다. 소중해진다. ㅡ 판단의 잘못이 그렇게도 시작하더라. 똑같이 전력으로 살아가도, 한번 잃어버린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더라. ㅡㅡ 그 때부터 시작이다. 소중한 것을 잃게 될지 놓치지 않게 될지는. 잃어선 안 될 것들을 잃지 않도록 악착같이 버틸 때가, 그 때부터 시작이다.

맑은 하늘과 바람이 부는 어느 봄 날에, 당시 네덜란드 독립 전쟁이 막 끝난 후에. 기갈이 영육간의 피폐를 고조시킬 때에. 당시 마가렛으로 불린 그는 1575년 그 나라 북부 지역에 건립된 레이덴 대학교에 연이 닿을 수 있었다. 그 학교는 당초 레이든 시민들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이었다. 거기에 마가렛이 엮이게 된 것 뿐이다. 마가렛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무척이나 이색적인 용모였기 때문에 다른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았다. 배움의 나라.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에 열심인 나라. 호기심은 그들의 기본 소양이었다. 마가렛에 대한 그 호기심을 가진 어린 사람 중에, 그도 있었다. 친애 하는 샤를로트. 단 하나를 향한 지나친 호기심은 좋지 않아요. 그대의 이전 세대가 하는 일들이 큰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답니다. ..

척독(尺牘)을 받는 기분이 어떠십니까? 친애하는 나의 벗, 나의 벗. 당신은 나의 이 편지를 받아야 합니다. 당신의 정원에 스치듯 부는 바람에, 이제 더는 꽃내음이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들꽃은 늘어만 가는데도, 관리인이 없어서인지 빛나는 건 없군요. 하지만, 당신이 만들어 놓은 이 정원의 터는 당분간 더 이 형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겠지요. 매마른 동공이 흔들리고 흠뻑 젖은 눈가가 새빨개져 가는데도, 당신은 그 무너지는 정원과 유형물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게지요. 형태 없이 불타오르는 인간의 감정이란 그렇게나 악의를 뿜어내었고, 당신은 무력한 자신의 두 손으로 본인의 눈을 가리는 수 밖에는 없었겠지요. 이 모든 일들에, 나는, 당신에게 그 어떤 것도 해 줄수 없었던 것에 참담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알다마다. 우리의 경로라는 것은, 우리가 원하지도 않은 어느 한 시공간 한 점에서 출발되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꼴사나운 민들레 씨앗에 지나지 않는 여정을, 그저 그럴듯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가 그것을, 어딘가에 다다르리라 믿기로 한 그 희망을 반영하여 경로 정도로 표현하는 데에는, 그 사람이 정처 없이 흘러 다니며 살아가다가 발견 한 마음속 목표 그 빛 한 줄기를 이유로 삼았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제는, 희망이 없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변하겠어요?" 어린놈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제는 그 이유마저 없단다. 아르바이트를 밤늦게까지 하는 데에 모자라서 낮에도 하나 더 뛴다지. 그래. 몸으로 스며드는 경험을 근거로, 그 희망이 사실은 환상이었다고 믿고 마는것도 당연하다...

지주가 술 한 잔 따라주겠다며 병을 조심스레 들었지만, 이우중씨는 그 술잔에 가득 담긴 머뭇거림을 비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조금만 더 속끓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무슨 자격으로 슬픔을 털어내려 하는가. 편의점의 차가운 형광등빛이 새까만 골목길에서 빛났다. 종이컵 시울 끝까지 고여있는 술도, 그 술잔도 빛났다. 반짝였다. 눈이 젖어갔다. 별처럼 눈부신 술방울을 흘려가며 잔을 들고, 반 모금을 홀짝였다. 남은 건 바닥에 촥 뿌렸다. 혀뿌리 끝까지 퍼지는 쓴 기운이 가셔지기도 전에, 두 손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비스듬한 그늘로 얼굴이 반 가려진 지주의 입가가 비뚤어지게 웃고 있었다. 이씨도 애써 구겨지는 눈썹을 참았다. 경련을 부르는 괴로움. 참자. 참아. 최루제 앞에 뜨고 있는 눈처럼 마시는대로 다 쏟고말..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보내게 되어 그 마음을 전하는 일이 더는 불가능해진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만물을 향한 자유로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니, 그는 이제 그 불가능이라는 억눌림 속에서 살아가므로 그리고 그 답답함을 한평생 자각하고 살아가야 하므로, 자유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작성하는데 오래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들은 너무도 치장되어 있어 기분이 나빴다. 내 심정은 이렇게나 괴로움을 연기하는 불꽃같은 게 아니다. 끈적하게 불타다가 새까맣게 굳고 마는 용암 같은 것이다. §. "받지 못하고 읽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편지를 쓰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은걸요." 반딧불이는 거미에게 말했다. 자신은 그런 사람들을 연민하고 아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주는 턱을 괴..


니시모가와*가 넓고 느리게 흐르는 소리를 따라, 강 가장자리에 높이 올라온 길고 긴 축방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을 무렵. 멀리서 달려가는 전철 소리가 들려와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떠났을 것이다. 입김이 퍼졌다. 자신의 나이를 더는 버티지 못하게 되었을 그가 그 무거운 몸을 끌고 구트나**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를 꾸역꾸역 받아들여 삼키자니 심장이 차갑게 식어만 갔다. 젊음이 살아있을 때에는 그 어리숙한 치기(稚氣)로 버텨보았겠지만, 뼛속까지 메말라 거죽과 노령만 남아있는 자신을 이제야 보노라니, 말끔하게 타고 남은 자리의 미열만으로도 아파오는 그 허약함의 규모를 종잡을 수 없어 괴로웠던 것이다. 살이란 데고 익으면 감각이 모두 죽기 마련인데, 마음은 그 오랫동안 뜨거운 자책을 잘도 품고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