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 재

2020. 5. 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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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는 양산 아래에서 그늘에 숨어 말했다.

 

"

'사랑은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노래 가사가 있잖아?

그치만 난 그렇게 생각 안해.
미련이 남았을 때 사랑으로 잊을 수 있는 거야.
미련은 사랑이 전제 조건이 아닐 수 있거든.
굳이 말하자면, 사랑이 타오르다 식어 남은 검은 재에서 마치 온기가 아직 느껴지는 것 같아 나로서는 차마 치우지 못하는 것, 그 정도겠지.


하지만 여전히 사랑이 남아있다면, 안타깝게도 다른 사랑으로는 잊을 수 없어.
그건 단념을 할 수 있는게 아냐.
사랑은 능동적인 요소거든.
이미 '나'는 방향을 정하고 고민을 정리해서 각오를 다지고 가야할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가고 있는게 사랑이라 할진데, 어떻게 그러는 중에 다른 사랑을 준비하려 할 수 있겠어.

하지만 만약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글쎄, 처음부터 사랑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구나. 내게 사랑은 그런 거야.


그러니, 
사랑해서 잊지 못하는 것과 미련이 남아 잊지 못하는 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해.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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