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자이로(Zyro)]

뜨거운 여름의 날씨는 여전했다. 하지만 달리는 발을 차마 멈출 수는 없었다.이글거리는 땅을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딛고 나아갔다. 자동차 한 대도 움직이지 않고, 사람도 한명 지나가며 볼 수 없었다.이 도시에 왠지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사실 혼자 있는게 맞을 것이다. 썬타임(SunTime)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태양의 열이 가장 강해지는 한 낮에 특히 18분~40분 동안은 외출을 자제하도록 하고 있다. 워낙에 위험하기 때문에 때로는 경찰분들이 주의를 주시기도 한다.그러나 그걸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비록 머리 위에서 폴리스봇(Police-bot)이 태양 빛을 가려주면서 따라왔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멈출 시간이 있다면 그 사이에 한걸음이라도 더 달리겠다. 어서 뮤시오에게 달려가야 한다. +..

스맙폰-예전엔 핸드폰으로 불렀지만-의 경우는, 자체적으로 AI를 슬리핑 시켜두는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나노바이러사이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좀 더 강력한 녀석이 아니라면 안심할 수 있대. 응. 강력한 녀석이 아니길 바라.. 스맙폰은 연락을 위해서 일부러 캡슐에 넣지 않았다. 일단 밖에 계시는 어머니 아버지께도 전화해서 상황을 알려 드렸고, AI들을 피신 시키는 무척이나 착한 일을 했으니 케이크 꺼내 먹어도 되냐고 여쭈어보았다. 그러나 냉장고에 부착된 AI를 떼어놓는걸 깜빡하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나는 입이 턱 막혔고, 그렇게 케이크는 보류 되었다. 으허엉. 냉장고 AI 떼러 가야지.. + 조용한 집. 거실도, 현관도, 안방도, 그리고 내가 바닥에 앉아 있는 이 방도 조용했다. 비행기가..

뮤시요에게서 텔링트윗이 날아왔다. '못난이'로 이름을 저장해 뒀었는데, 어느새부터인가 "이쁜이 뮤싱'으로 바뀌어 있다. 언제 내 폰을 건드렸지? 손 버릇 나쁘네, 이 아가씨.. 내용은 이러했다. [나 내일부터 일 주일간 32-8행성으로 여행 가. >ㅅ< 거기서 이번에 와일레비 롯츠 300년 기념 파티가 열리거든. 아, 그래. ㅡ_ㅡ 근데 완전 좀 짱나는 일이 생겨버렸어. ㅜㅅㅠ 내 사랑스러운 보르졸에게 심어놓은 AI가 일반 대중에 시판 된 제품이 아니라고 아토믹텔레포터에 탑승이 불가능하다는거 있지? 그 안에 든 정보까지 읽혀져서 제품의 기술력이 도용이 될 수 있다면서 말이야. 나 참. 그런거 개발하라고 우리 집에서 자금 대 주는건데, 얘네는 도대체 뭐 하나 몰라!! 어휴!! 뭐 아무튼간에 그렇게 되서 내..

"아오, 저 예쁜 얼굴들." 그 부잣집 아가씨가 하교를 같이 하자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미천한 서민 취급 당하던 나는 사실 이 아가씨와 친한 친구로 되어있다. 이 녀석은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미묘하지? 응. 나 지금 기분 정말 미묘해. 그런 미묘한 아가씨와 길을 걸으며 유리맛 사탕을 핥아 먹는 하교 길. 문득 그 아가씨가 한마디 툭 내던진 말이 고작 저것이다. "뭐라구요?""아오, 저 예쁜 얼굴들이라 했어요.""왜 존댓말이야. 짜증나게.""...너, 너!! 나한테 그렇게 말 할 수 있어?! 서민주제에?!!" 노발대발. 아름다운 웨이브 진 금발이 찰랑. 분홍색 머리띠. 전형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유리맛 사탕 내 놓으라 화 내는 뮤시요를 발길질로 떨어뜨려 놓고는 그대로 다시 갈 길..

하루는, 같은 반에 있는 어느 부자 집 아가씨께서 내 자이로를 보고는 콧방귀를 뀐 적이 있다. "그게 뭐니? 자.. 자이로드롭이었던가? 그런 구시대적인 물건을 가지고 놀다니. 게다가 뭐야. 거기다가 AI볼을 껴 놓았네? 아주 즐거운 모양이구나." 호호홋, 입을 가리며 웃는 그 아가씨는 자신의 어깨에 서 있는 앵무새에게 키스를 했다. 내가 알기로는 저 앵무새 머릿 속에 AI칩을 심어놓았다고 한다. 덕분에 인간의 지능만큼 지능이 향상 되었다고. 이 아가씨라는 녀석이 이 곳에 전학을 왔을 때부터, 우리반 학생들은 그 앵무새와 그런 아가씨에게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생명체의 머릿 속에 AI칩을 이식하는 일은 무척이나 돈이 많이 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AI가 세계 곳곳에서 빛을 뿌리고 다..

야한 꿈을 꾸었다.청소년이 꾸는 그 야한거 말고, 꿈 속에서 정말 '야!'하고 소리 친 꿈이었다.새 하얀 배경에,나 혼자새하얀 원피스 입고,바람 한 점 없는 그 곳에서정면을 보며"야! 야! 야!"하는 꿈이었다. 이게 무슨 개 풀 뜯어서 녹즙 빼 마시는 꿈이야?!! + 그 묘한 꿈에 번뜩 눈을 뜨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이 꿈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일어나자 마자 휴대용 뇌파 검지기를 머리에 붙였다. 오늘의 바이오리듬은 과연 어떠려나.그러나 아쉽게도 뇌파 검지기의 색깔은 탁한 회색으로 변하였다. 오늘은 그리 좋지 못한 듯 하다.하긴. 그러니까 저런 꿈도 꾸지. + 오늘은 일요일. 미스터 크리스트는 안식일이라고 지정 한 날, 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미 율법은 폐기 된지 오래이니, 안식일이란 것도 사실은 없는..

어느 여름.휴대용 슬러시 컵을 든 채로 길을 걸어 나아갔다. 아슬아슬한 곳까지 올라온 핫팬츠 마저 더웠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걸었다. 새하얀 상의는 도시 건물 곳곳에서 부는 선선한 바람에 나풀거리고 덕분에 그 바람이 속으로 들어와 시원했다. 그러나 이런 날 밖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싫다.자이로도 불평 불만이다. "금속이 팽창했어. 이대로라면 마찰계 면적 부위에 걸리는 마찰이 0.00153에서 0.0035로 증가한다고. 어서 시원한 곳으로 가자.""그러지 마. 그만한 증가는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아." 터덜 터덜.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슬러시를 한 모금 마셨다. 가슴주머니에 들어가 출렁 늘어져 있는 자이로는 이리 저리 흔들려 움직인다. 가끔씩 '중심계 이탈!'이라던가, '중립축 궤도 이탈!'이..

0# 요점은 그것이다. 초소형 AI가 판을 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겨우 자이로스코프 중심에다가 그것들을 심어놓는 실력밖에 없는 나로서는, 이 세상의 발전이 너무 빠르다. 구름은 저리도 느리고, 등굣길도 언제나 바뀌지 않는 만큼 세월의 흐름은 느릴 줄 알았거늘, 단지 30년 전의 사진과 지금을 비교 해 보면, 이 세상은 총알보다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우앗, 빨라! 남들은 막 손가락에다가도 AI를 심어놓기도 하고, 또는 뇌와 동일한 자리에 두어 좀 더 논리적인 사고를 향상 시키기도 한다. 물론 그런 것은 고급이고, 복잡하고 상당한 기계와 결합을 시켜 AI의 기능을 업그레이드 시키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도 고급은 고급이다. 반대로 나의 경우는 그냥 자이로스코프의 무거운 회전 추 중심을 파내어 그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