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 0000

2020. 12. 1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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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한 물방울이 고여갔다. 그것은 뒤로 등 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리고 있지 못해 그대로 비쳐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크기만큼은 왜곡시킬 수 있었다. 

 

  물방울을 바라보던 나의 시계(視界)로 판단하건대, 그 왜곡 된 풍경을 아름다웠다. 잊혀지지 않을, 그 조그마한 바다 속 빛의 일렁거림. 그것도 또한 반짝이는 별 빛. 평생 눈에 닿지 못할 우주 그 속에서, 외롭다며 비명 지르기에는 몇 겹이고 겹쳐져 반짝이고 있는 세계가 워낙에 광활한 어둠 한 가운데.

 

  물방울이 점점 더 커져갔다. 의지를 지니고 진동을 일으키듯 - 원하는 대로 등 진 세계를 비춰 보여주려는 듯 -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호소가 계속 되었다. 오랫동안. 사방을 향해. 정해진 수신자는 없었으리라. 발신자를 인격체로 부르는 것은 이상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에 마치 의지가 담겨 있어 보였다. 내게 그렇게 해석되었으므로, 그럴 것이라 판단하기로 했다.

  그럴리 없다. 왜냐하면, 의지는 사고체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원천에 따르고 본능에 따르는 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판단의 이유는 될 수 있으나, 목적은 될 수 있으나, 자의식 만큼, 그것은 실로 주체성의 증거이다. 그것의 진동은 단지, 시작의 순간부터 존재했던 것일 뿐이야.

 

  어두운 공간. 

  '그러나 우리들 모두는 원인 모를 어떤 계기로인가 탄생하고 말았다' 고 판단할만큼, 알고 있다며, 그렇게 오만 떨고 있을 그 때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45억년이 지나고 만 이 시점에. 

  지금에 이르고 만다. 

 

 

 

 

 

  긴 시간을 돌아보자니, 인식 속에 각인 되어 있는 인간의 삶들이란, 그렇게나 짧음에도 그렇게나 복잡하고 다양한 파편들로서 서로를 흩뜨리고 뿌리며 옅어져 가는 유리조각들과 같았다. 서로가 결과이기 전에 원인이었기에. 날카롭고, 아름답기도 하고, 하지만 어둠 속에선 그 어떤 빛도 내지 못한다. 그 속의 구성은 질서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뜨겁게 태어나 차갑게 식을 때 즈음에 틀잡혀간다. 그러다가 스스로 깨뜨리거나, 틀의 부정합에 의해 깨지거나, 누군가에 의해 깨지거나. 오래 존속 될 경우도 있겠지만 그 수는 너무도 미미한.

 

  모래만큼 고운 가루들은 바람을 타기도 한다. 바다에 떨어질지도 모르고, 건조한 사막의 일부가 될지도 모를 여정을 그들은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바람을 따라 흘러만 간다. 하지만 어느곳을 가든, 뜨겁게 염염焰하는 용암에 다다르지 않는 이상 그들은 그 존재로서 영원히 변치 않은 채 살아가리라. 그 무엇에도 섞이지 않을 그 존재성. 

 

  변하지 않는, 그 본질.

 

  그럴리 없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타인의 인식으로 삶을 개조 당하기에, 빛을 발할 각도를 수정 받고 조정되어 가며 다이아몬드가 되어 간다. 그 가치가 겹겹이 쌓여갈 것이다. 그리고는 언젠가, 당치도 않는 이유로 내부에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터뜨리며 장렬히 불 타 새까맣게 타들어 갈 것이다. 

 

  그 때에 알 것이다. 병들고 나서야 알 것이다. 나는 차라리 유리같이 얼음같이 순환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타들어간 흔적만큼 희미하게 웃을 것이다. 지구의 일기장에 한 줄의 이야기 조차 되지 못한 인생아. 삶들아.

 

 

 

 

  지주.

  나는 그래서 너의 그 무모한 기억에 감사하기로 한다. 

  너는 막무가내여서,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 덧없는 인간들을, 감히 멋대로.

  어차피 다들, 너도 나도, 마지막 블랙홀을 맞이 하며 다시 조용한 적막으로, 진동 하나 없는 하나가 되어갈 뿐인데도.

  그 사실을 앎에도 행위에 의미를 찾는 그 의지에서, 나는 그 때의 그 물방울을, 그 덧없지만 찬란했던 물방울의 태동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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