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단문

일식이 일어난다는 뉴스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저와 소녀 G는 어느 한 공원에서 만나 그 일식을 함께 보기로 했죠. 소녀는 일식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일식이 너무도 기대가 된다고 했습니다. 비록 부분만 가려지는 부분일식이었지만, 세상의 정밀성이 돋보이는 현상인 만큼, 기대에 가득 찬 눈은 반짝였습니다. 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3분만 지나면 일식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준비한 셀로판지와 용접 마스크를 각자 들고는 조용히 태양이 잘 보일만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습니다. 바싹 마른 햇빛이 따스했기 때문에 기분이 붕 들뜨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은 옅은 수채화같이 눈 부셨고, 그렇게 하늘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얼마 남지 않았대." 문득, 정말 문득, 옆에 함께 누워있던 새..

소녀와 소년 이야기. 비가 내려서 밖에 나가지도 못한 탓에, 소녀는 소년을 만날 수 없었다. 눅눅한 반 투명 커튼이 회색빛. 구름 낀 하늘에선 그저 비만 쏟아진다. 음악을 들어볼까 하고 라디오를 켰는데, 왜 사람들은 이럴 때 모두 우울한 발라드만 듣는건지. 소녀는 라디오를 껐다. 소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어제까지만 해도 낮에는 선명한 파란색과 새하얀 분홍빛 벚꽃이 흩날렸었는데. 꽃 구경하자고 약속 한 후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확인한 날씨는 '앞으로 비'였다.아뿔사. 괜스레 핸드폰 한번 들었다가 놨다가. 다시 들었다가 이내 주머니 속에. 소녀는 진작부터 핸드폰을 쥔채 기다리다 지쳐 잠 들었다. 마음 하나 몰라주는 하늘이 밉상인 하루. 소년과 소녀는 만날 수 없었다. ◇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용기를 낸 ..

인생사 피카레스크.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고 나는 믿는다. 일반적으로 옴니버스라고 알고 있겠으나, 사실 용어 사용이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자주보는 애니메이션은 같은 인물이 다른 이야기로 매 화를 채워간다. 1화에서는 넘어지는 차이카, 2화에서는 물러터진 귤을 보고 화를 내는 카네, 3화에서는 이 둘에게 화를 내는 화투카가 나온다고 해도, 1화나 2화나 3화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어차피 '마니마가'라는 작품 내에서 언제나 등장한다. 1화에서도 세명은 기본으로 나와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인공이니까. 따라서 이것은 옴니버스가 아니라는 것이야.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샬록홈즈 시리즈도 피카레스크. 절대 옴니버스가 아니다. 공기는 투명하게 맑아 깨질 듯 하면서도 너무도 높아서 손에 닿을리 ..

고등학교 때, 나는 공업고등학교의 교육에 맞는 과제를 받은 적이 있다. 화학공업과 소속이었던 나에게 주어진 것은 '환경 오염과 그로 인한 지구의 영향을 발표'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시간짜리로. 과학이 좋았고 또 조사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그나마 재밌는 제안이었다. 이거 하면 1년 수행평가 만점이래. 우앜! 그런 심정으로 OK사인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알고보니 나 개인에게 시킨 일이 아니라 우리 조에게 시킨 것이었다. 요컨대 그거지. 분담하라는 거지. 사실 환경 오염이나 그에 따른 기상이변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광범위 하다. 때문에 분담하여 조사 또는 발표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치만 뭐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꽤 실망했다. 그냥, 혼자 해야 할 것을 나눠서 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가지 이야기 해 보자. 나는 지금9시 23분을 가리키고 있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다. 사실 얼마짜리인지는 상관 없고, 그 값이 비싸다고 해서 내가 할 말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내 시계는 엄청 싸다. 자 이제 이 시계를 차고 나는 시공간여행을 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X년 전 X월 X일, X시 XX분 XX초 XX 전의 x, y, z좌표를 가진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과거여행인 것이다. $ 자 이제 과거로 이동했다. 대기 속엔 석탄 냄새가 한가득. 퀴퀴하고 톡 쏘는 황 냄새가 심하다. 산업혁명 때인가? 아니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동한건 분명해. 왜냐하면, 시각에 닿는 건축물들이 모두 고딕양식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내 시계를 보자. 과연 몇 시를 가리키고 있을까? '~' 당연히 9시..

분명한건, 난 시공간 여행을 하여 아이를 만났고, 그로 인한 결과가 바뀔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괜히 물리학을 공부하려 한게 아니다. 아니, 취미로 공부하려 한게 아니다. 아니, 알고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렇지.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걸었어야 할 내가, 오늘은 왠지 모르게 여기서 이렇게 시공간이 바뀐 '현실'을 살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이지? $ 시간이란 녀석은, 아무래도 세계라고 하는 게임의 전역변수쯤 되는 거창한 녀석이 아닌가보다. 사람마다 이야기가 다르고, 법칙이 다르고, 현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다. 이것은 특정 시공간에서 겪게 된 배경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인격쯤 되는 녀석이니까. 그러므로, 세계라는 거창한 곳에서 시간이라는 녀석은 어디서든 동일하게 정해지는 그런 공통적인 것이 ..

길이 있어서 걸었다고 말 해봤자, 어차피 결정은 나 자신이 하는 것이기에 누구에게 하소연 하나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에 꿍 하고 두고 있으면 그 숯은 어느새부터인가 불이 일기 시작해 심장을 온통 하얗게 태워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어두운 숲을 헤쳐가는 것 만큼 어려운 암담한 것도 없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곰의 숨소리가 가까워지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조용히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것 만큼 미칠 경우도 없지만, 공통적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사람은 미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앞을 바라보고 길이 어디를 도착하게 될지 제대로 확인 하고 걸을 필요가 있다. 분명 표지판은 존재하고, 지도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의 끝에 지옥이 있을지 땅이 있..

아주 조그마한 아이도 꿈을 가지고 있었어. 나라고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어. 나에게도, 나에게도.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뒤에서 웃더라도, 난 내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어.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이미 꿈을 이뤄버렸어. 난 내 꿈이 언제쯤 꽃필까 기대하고 있었어.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나에게 꿈을 포기하라고 했어. 난 내 꿈을 살펴보았어. 꿈은 돌처럼 딱딱했어. 난 매우 당혹스러웠어. 따뜻하고 포근했던 꿈이 어느새 차가운 돌이 되어버렸어.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그 꿈을 달라고 했어. 난 내가 이루지 못할 꿈을 그 아이에게 줄까 생각도 해봤어.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난 내 꿈을, 하지만, 난 나의 꿈이 무엇인지, 마지막에 알았어. 나의 꿈은 단순한 돌이 아냐. 다이아몬드였어.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저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