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다리-TN]

어김없이 우리는 벤치가 있는 공원으로 왔다. 그 무거운 짐들을 어서 집까지 가져가고 푹 쉬고 싶었지만, 이런 더운날 아이스크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다시 마트에 들어가 나와 소녀의 몫까지 두개를 사 들고 나왔으니, 일단 먹고 들어가자는 대충대충벌레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대충대충벌레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면 꼭 사전을 찾아보길. 절대 나오지 않는다. 어김없이 맑고 파란 소리를 뿜어대는 분수를 바라보며 나와 소녀는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었다. 하드로 사왔다. 오래 먹을 수 있으려나 싶어서. 사실 소프트아이스크림은 이런데서 사면 맛도 없는데다가, 너무 빨리 녹아서 정신없이 먹어야 하니까 그런 여유가 없는 것이 짜증난다. 물론 소녀는 소프트 쪽이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사 주는데 뭐라..

물건을 고르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도대체 소녀는 이 시원한 마트가 왜 위험하다고 말했던 것일까. 가장 보편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건, 이런 큰 마트에 대한 매우 안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쯤이려나. 왜냐 하면, 사람이란 자고로 자신이 직접 목격한 충격적인 장면은 잊지 못하는 법이거든. 혹시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사실 이 소녀는 매우 청결한 아가씨여서, 이런 곳에서 틀어주는 에어컨에 있는 수 많은 세균과 닿고 싶지 않았을 수 있다. 이런 곳에서 틀어주는 에어컨을 마트 주인이 수시로 청소해 줄리도 없고, 청소해 준다고 해도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해 줄지도 모를 판이다. 갑자기 불신이 마구 피어오른다. 안돼. 사람은 서로 믿음으로 인해 성장하고 넓어지는 존재이다. 안돼, 안돼. ……. ..

"어제는 갑자기 사라지는 마술을 선보였습니다." "오옹. 그게 마술이었구나~! 시끄러." 소녀가 어제의 변명을 툭 던졌고, 나도 툭 맞장구 쳐 주었다. 그리 심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오늘도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모처럼 사귄 친구, 그리 쉽게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때문에 오늘도 나란히 걷고 있다. 휘이 지나가버리는 승용차를 따라가는 바람들이 뜨거워 눈이 나른해지는 날씨인데, 소녀는 가벼운 옷차림과 어울리게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얼핏 본 소녀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음? 뭐지? 그리고 도착한 곳은 어제의 그 '큰 마트'. 무심코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아니나 다를까 소녀가 없다. 그럼 당연히 거기 있겠지 하고 뒤를 ..

다음날 아침. 뭔가 어제의 마무리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소녀와 갑자기 헤어진 이후로 나는 내가 무언가 실수를 한건가, 아니면 그 아가씨가 역시나 전파라도 받은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의식중에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걸음이 멈춘 곳은 집 앞 현관이었고 신발을 벗으려 허리를 숙일때 왠지 모르게 비어있는 반대쪽 손이 어색했다. 아아, 놓고왔다. 부탄가스를 놓고와버렸다! 결국 허겁지겁 다시 돌아가서 부탄가스가 들어있는 봉투를 찾기에 바빴고, 그런 노력에게는 좋은 결과따위 개죽 쑤어먹으라는 듯 보이지 않았다. 물론 다시 사 올 수도 있었지만, 그때부터 어머니의 호출로 가게 일에 하루종일 바빴기 때문에 부탄가스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일이 끝난 밤 10시 쯤에 다시 집 앞 현관에 다다랐을때 역시나 ..

이러저러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만난지는 얼마 안 된 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성을 높이는 그녀가 생각했을 무언가를 예상해 본다면, 적어도 좋은 이유가 아니라는건 확신할 수 있었다. 저런 멍한 눈으로 말이다. "저 곳은 무서운 곳이야." 이윽고 소녀가 말을 꺼냈다.올 것이 왔다는 기분이었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난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를 뿐더러, 화가나게 한 기억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각오를 다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에게 표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한다면 오버이지만, 아무튼 잘 듣자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말 하니까. 그치만 그것이 끝이었는지, 그녀는 이 이후로 아무 말이 없었다. 어? 뭐야 이거. 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괜히 더운곳에 서서 열을 올리는 소녀가 보기 힘들어 일단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자기도 그리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째서인지 표정은 아직도 굳어져 있다. 이토록 뚱해있을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더더욱 불편하기만 했다. 그리고 자리는 이내 그 공원 벤치가 되었다. 다리가 풀린 것 처럼 털썩 주저앉아버린 나와는 다르게 소녀는 조용히 다가와 다소곳이 앉았다. 청바지 안이 더운 습기가 찬 것 처럼 끈적거려 기분이 나빴다. 이곳에 오면 그나마 시원해질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바람이 불지 않았다. 녹지 않았길 바라면서 재빨리 아이스크림을 꺼냈고 소녀에게도 하나 주었다. 그저 조용히 받는 G였다. "그래서─," 봉지를 찢으면서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뭐가 괜찮냐는거야? 보시다시피 나는 아무..

문이 열리자 뜨거운 압박이 느껴졌다. 이글거리는 주차장 한 가운데 소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뭐라고 말을 걸까 아주 잠깐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미 소녀는 입을 열고 있었다. "괜찮아?" "..어?" 목을 빼면서 가까이 다가온 소녀덕에 잠깐 주춤하며 발을 세웠다. 눈썹이 걱정스럽다 외치고 있다. 정작, 난 내가 지금 분위기를 읽지 못한건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너무도 뜬금없었으니까! "미...안, 방금 잘 못들은것 같..." "괜찮냔말야!!!" 매미소리가 어디서인가 들려왔다. 여름. 그녀는 이 여름에 이렇게나 소리를 질렀다. iPod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오늘은 시내쪽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어제 부탄가스를 사지 못해 삼겹살을 구울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가스렌지를 가져다 놔야지, 안 그러면 부탄가스를 교체 할 때마다 돈낭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초, 집이란 곳에 그런거 하나 준비되지 못한게 더 한탄스럽지만, 미루고 미루다보니 오늘에 이르고야 말았다. 더 한탄스러운 순간이다. 이 인근에선 그나마 큰 마트로 당장에 들어갔다. 세이브존에 들어온 기분으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걸었다. 에어컨이 풀가동중인데다가, 오늘의 복장은 반팔에 반바지여서 찬 공기가 몸 속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다가, 함께 따라온다던 소녀가 더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스크림코너로 이동했다. "뭐 먹을래?" 언제나 오른쪽에 붙어 걸어오던 소녀에게 물었다. ..

흰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록 나뭇잎들이 바람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면서 시원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단지 공원 한 가운데서 물을 뿜어 올리는 분수에서만 여름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어제 자기 전에 생각한 건데, G는 겉보기엔 학생인데 왜 학교에 다니지 않는걸까. 혹시 동안? 그래서 물었다. 교복 안 입냐고. 그러자, "넌 학교 다녀?" 라고 되묻는 소녀 G. 내가 먼저 물어보긴 했지만, 일단 대답을 해 주었다. "나? .....뭐, 대학생이니까 공부는 하지만, 사실 다니지는 않지. 원래 그런 학교거든. 집에서 공부해도 되는 대학교." "너도 그런데, 나라고 안 그러겠어?" 좀 재미있는걸 물어봐, 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소녀가 말했다. '너만 특별한게 아냐'라는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