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
이러저러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만난지는 얼마 안 된 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성을 높이는 그녀가 생각했을 무언가를 예상해 본다면, 적어도 좋은 이유가 아니라는건 확신할 수 있었다. 저런 멍한 눈으로 말이다. "저 곳은 무서운 곳이야." 이윽고 소녀가 말을 꺼냈다.올 것이 왔다는 기분이었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난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를 뿐더러, 화가나게 한 기억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각오를 다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에게 표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한다면 오버이지만, 아무튼 잘 듣자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말 하니까. 그치만 그것이 끝이었는지, 그녀는 이 이후로 아무 말이 없었다. 어? 뭐야 이거. 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아주 조그마한 아이도 꿈을 가지고 있었어. 나라고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어. 나에게도, 나에게도.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뒤에서 웃더라도, 난 내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어.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이미 꿈을 이뤄버렸어. 난 내 꿈이 언제쯤 꽃필까 기대하고 있었어.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나에게 꿈을 포기하라고 했어. 난 내 꿈을 살펴보았어. 꿈은 돌처럼 딱딱했어. 난 매우 당혹스러웠어. 따뜻하고 포근했던 꿈이 어느새 차가운 돌이 되어버렸어.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그 꿈을 달라고 했어. 난 내가 이루지 못할 꿈을 그 아이에게 줄까 생각도 해봤어.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난 내 꿈을, 하지만, 난 나의 꿈이 무엇인지, 마지막에 알았어. 나의 꿈은 단순한 돌이 아냐. 다이아몬드였어.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저만치..
괜히 더운곳에 서서 열을 올리는 소녀가 보기 힘들어 일단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자기도 그리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째서인지 표정은 아직도 굳어져 있다. 이토록 뚱해있을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더더욱 불편하기만 했다. 그리고 자리는 이내 그 공원 벤치가 되었다. 다리가 풀린 것 처럼 털썩 주저앉아버린 나와는 다르게 소녀는 조용히 다가와 다소곳이 앉았다. 청바지 안이 더운 습기가 찬 것 처럼 끈적거려 기분이 나빴다. 이곳에 오면 그나마 시원해질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바람이 불지 않았다. 녹지 않았길 바라면서 재빨리 아이스크림을 꺼냈고 소녀에게도 하나 주었다. 그저 조용히 받는 G였다. "그래서─," 봉지를 찢으면서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뭐가 괜찮냐는거야? 보시다시피 나는 아무..
문이 열리자 뜨거운 압박이 느껴졌다. 이글거리는 주차장 한 가운데 소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뭐라고 말을 걸까 아주 잠깐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미 소녀는 입을 열고 있었다. "괜찮아?" "..어?" 목을 빼면서 가까이 다가온 소녀덕에 잠깐 주춤하며 발을 세웠다. 눈썹이 걱정스럽다 외치고 있다. 정작, 난 내가 지금 분위기를 읽지 못한건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너무도 뜬금없었으니까! "미...안, 방금 잘 못들은것 같..." "괜찮냔말야!!!" 매미소리가 어디서인가 들려왔다. 여름. 그녀는 이 여름에 이렇게나 소리를 질렀다. iPod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오늘은 시내쪽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어제 부탄가스를 사지 못해 삼겹살을 구울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가스렌지를 가져다 놔야지, 안 그러면 부탄가스를 교체 할 때마다 돈낭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초, 집이란 곳에 그런거 하나 준비되지 못한게 더 한탄스럽지만, 미루고 미루다보니 오늘에 이르고야 말았다. 더 한탄스러운 순간이다. 이 인근에선 그나마 큰 마트로 당장에 들어갔다. 세이브존에 들어온 기분으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걸었다. 에어컨이 풀가동중인데다가, 오늘의 복장은 반팔에 반바지여서 찬 공기가 몸 속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다가, 함께 따라온다던 소녀가 더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스크림코너로 이동했다. "뭐 먹을래?" 언제나 오른쪽에 붙어 걸어오던 소녀에게 물었다. ..
흰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록 나뭇잎들이 바람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면서 시원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단지 공원 한 가운데서 물을 뿜어 올리는 분수에서만 여름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어제 자기 전에 생각한 건데, G는 겉보기엔 학생인데 왜 학교에 다니지 않는걸까. 혹시 동안? 그래서 물었다. 교복 안 입냐고. 그러자, "넌 학교 다녀?" 라고 되묻는 소녀 G. 내가 먼저 물어보긴 했지만, 일단 대답을 해 주었다. "나? .....뭐, 대학생이니까 공부는 하지만, 사실 다니지는 않지. 원래 그런 학교거든. 집에서 공부해도 되는 대학교." "너도 그런데, 나라고 안 그러겠어?" 좀 재미있는걸 물어봐, 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소녀가 말했다. '너만 특별한게 아냐'라는 듯한..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버린다고는 하지만, 쓸 만한 것을 버리는 것은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매우 부유한 시대로서, 솔직히 돈만 벌면 뭐든 살 수 있고 할 수 있는 시대이다. 또는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지. 그러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절약이라던가 실용성에 대한 생각은 많이 사그러든 것 같다. 이젠 100원짜리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 사람들이 허다한 데다가, 요즘 누가 헌책방에 가냐며 수도권 지역에 있는 커다란 서점에 찾아가 유명 작가들과 악수나 하고 앉아있다. 문화의 질이 좋아진건 사실이오나, 그것으로인해 '평범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괴(自壞*)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이미 '우..
그러고 얼마 더 있다가, 우리는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각자 갈 길을 갔다. 그때가 정확히 10시 반이었다. 오전 시간을 꽤 평화롭게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았을때, 소녀는 어째서인지 가던 길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었던걸까 하고 나도 조용히 그쪽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마음속 어디선가부터 들려온 예상대로 마네킹처럼 우뚝 서 있는 채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 그냥 손만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소녀는 잠시후 조용히 손을 흔들어 주고는 가던 길을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오늘 할 일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냉장고가 비었으니 장을 보고, 이웃 집 아저씨 일을 좀 도와드리고, 블로그 광고도 조금 관리 하고. 오늘은 대충 이런 일이려나. "자 그럼, 빨리 시..
"너, 여유로운거냐, 할일이 없는거냐?" 돌연 던진 내 질문에 소녀는 응? 하고 시선을 마주쳤다. 싱그러움이 바람을 타고 천천히 흘러만갔다. 아침의 여유마저 느껴진다. "아, 나한테 질문한 거였어?" 그리고는 캡 모자를 벗는 소녀가 이제야 알아차린듯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이 벤치엔 나와 소녀밖에 없다는 것에 유의하자. "어젠 길을 가다가 낚시방송이 생각나서 낚시를 했어. 그 전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그 전엔 고양이와 싸웠어. 분명 내 생선이었는데 녀석이 자기 것이라고 우겼거든." 불만이었던 건지, 고양이 이야기를 할 때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고는 결국 자기가 이겼다며 좋아했다. 소소한 것에 행복을 찾는 넌 혹시 현자이더냐. "결국은 할일이 없다는 거로군." 그리고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