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걷다가 공원 입구가 보였다. 산책의 정석은 공원이다 싶어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G도 순순히 따라왔고 우린 그렇게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았다. 앉자마자 느껴져 오는 시원함에 기지개를 폈다. 옆눈으로 보니 G도 기지개를 펴고있었다.
모발에 손상이 지대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독한 약으로 탈색 시킨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햇빛에 그 머리카락들은 고와 보였다. 이 아가씨가 지금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검은색이 싫어서 탈색시켰다는데에 딴지는 아무래도 좋을 정도.
노란 머리라는 점에서 외국인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눈동자도 그렇고 얼굴형도 분명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그래서 난 물어보았다. 머리색에 대해서. 그러자 그녀는 "이거, 검은색이 싫어서 탈색시킨거야." 라며 손으로 정수리를 가리켰다. 뭐?!
조금 더 그녀를 자세히 보자면, 그녀의 머리카락은 허리를 덮을 정도로 길게 내려온 노란 생머리였고, 앞머리는 가리지 않아 이마가 환히 드러났다. 피부는 햇빛에 반짝이는 것 처럼 하얗다. 남색 반바지에 하얀 티셔츠가 그녀가 입고있는 옷의 전부.
이 소녀는 상당히 독특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거지. 그... 사차원소녀. '정신, 사고, 이성'이라는 3차원에 뭔가 하나 더 더해진 듯한 그녀는 앞에 있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빛조차도 신기했다. 노을진 어제 때도.
심심하게 말을 걸어보았다. "너 어제, 낚시같은거 하고 있지 않았어?" 소녀는 앞만 보며 걷는다. "응. 물고기가 있어보여서. 하지만 정작 사람을 낚았지." 이 순간 담담히 말하고 있는 G에게 필요한건 나의 딴지였다. "난 스스로 나왔거든?"
소녀는 캡 모자를 다시 썼다. 같이 걷기로 한 것이다. 아침부터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싱그러운 그림자를 밟아가는 나와 소녀. 왼쪽으로는 마을을 구분짓는 개천이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낮은 울타리의 집들이 지나간다.
마음에 걸린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번에도 혼자 두고 갈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어…물론, 그냥 무시하고 가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우리 둘은 꽤 말을 섞어버렸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엮여버렸다. 맙소사.
G는 여전히 다리쪽을 바라보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조금 다가가보니 G는 어제 자신이 앉아있던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리 아래. 어제 이 소녀는 낚시같은걸 하고 있었다. 난 뒷통수만 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