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2010. 9. 1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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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갑자기 사라지는 마술을 선보였습니다."
 "오옹. 그게 마술이었구나~! 시끄러."

 소녀가 어제의 변명을 툭 던졌고, 나도 툭 맞장구 쳐 주었다. 그리 심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오늘도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모처럼 사귄 친구, 그리 쉽게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때문에 오늘도 나란히 걷고 있다. 휘이 지나가버리는 승용차를 따라가는 바람들이 뜨거워 눈이 나른해지는 날씨인데, 소녀는 가벼운 옷차림과 어울리게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얼핏 본 소녀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음? 뭐지?

 그리고 도착한 곳은 어제의 그 '큰 마트'. 무심코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아니나 다를까 소녀가 없다. 그럼 당연히 거기 있겠지 하고 뒤를 돌아보았고, 역시나 소녀는 저 뜨거운 아스팔트 주차장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이 상황에서 그냥 들어가버리면 다신 소녀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원초적인 직감이 들었기 때문에 다시 소녀에게로 걸어갔다. 소녀는 아까 그 미소를 더이상 보여주지 않고 있다.

 "오늘도 들어갈거야?"

 소녀가 묻자 난 답했다.

 "응."
 "어째서!!"

 소녀가 소리쳤다. 그럼 난 할 말이 있으니까 일단 해 본다.

 "그야, 일단 밥은 먹고 살아야 할거 아냐. 그리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니까 사야 하잖아. 그러니까 들어가야지. 아, 게다가 시원하거든, 여기."
 "우아! 그런거 집어 치워! 필요없어!"

 소녀는 지금 식(食)이 필요 없다고 버리라고 한 것이다. 살지 말라는 것이냐.
 난감했다. 그렇지만 일단 좀 참아보고 내가 들어가서할 일을 이야기 해 주기로 했다. 
 한걸음 다가가갔다. 소녀는 그저 서있을 뿐이다. 어째 눈매에 생기가 돈 듯 하다. 노려보고 있어서 그런건가. 아쉽다면 아쉽군.

 "잘 들어. 난 지금 저기 들어가서 시원한 바람 속에서 싱싱한 라면(?)을 사서 나올거야. 어제 잃어버린 부탄가스도 살 거고. 아, 아이스크림도 사야지. 맛있잖아. 너도 먹을거지?"
 "당연하지."
 "좋아. 그럼 저기 그늘에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들어갔다 나올테니까."

 손가락으로 소녀가 서 있을 정문 옆 자판기 쪽을 가리켰다. 소녀는 잠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다시 눈을 마주쳐왔다. 아직도 뭔가 속으로는 싫은 듯한 표정이다. 요 얼굴에서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면 난 아마 오늘의 부탄가스를 포기했을 것이다.
 결국 소녀는 성큼성큼 자판기쪽으로 걸어갔고 나도 그 뒤를 따라 갔다. 자판기쪽엔 그늘이 들 수 있도록 따로 지붕을 길게 빼냈기 때문에 나름 선선했다. 맞아. 소녀가 서 있기 딱 좋은 곳이라서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한 것. G는 도착하자마자 뒤를 돌아 다시 내쪽을 보았다. 그리고서 하는 한마디.

 "꼭 살아서 돌아와."

 누가보면 전쟁 나가는 줄 알겠다. 장난이라도 쳐 볼까 하는 생각에,

 "걱정마. 아이스크림은 꼭 사수하고 나올게."

ㅡ라고 씩씩하게 말해버렸다. 소녀의 입가는 다시 아주아주 옅은 미소. 그치만 이번엔 얼굴 전체의 표정이 '넌 참 용감하구나.'라고 말하고 있어서 그것 또한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난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에어컨 바람이 날 맞이해 주었고, 곧장 부탄가스가 있는 코너로 더 깊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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