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2010. 6. 29.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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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뭔가 어제의 마무리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소녀와 갑자기 헤어진 이후로 나는 내가 무언가 실수를 한건가, 아니면 그 아가씨가 역시나 전파라도 받은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의식중에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걸음이 멈춘 곳은 집 앞 현관이었고 신발을 벗으려 허리를 숙일때 왠지 모르게 비어있는 반대쪽 손이 어색했다. 아아, 놓고왔다. 부탄가스를 놓고와버렸다! 결국 허겁지겁 다시 돌아가서 부탄가스가 들어있는 봉투를 찾기에 바빴고, 그런 노력에게는 좋은 결과따위 개죽 쑤어먹으라는 듯 보이지 않았다.
물론 다시 사 올 수도 있었지만, 그때부터 어머니의 호출로 가게 일에 하루종일 바빴기 때문에 부탄가스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일이 끝난 밤 10시 쯤에 다시 집 앞 현관에 다다랐을때 역시나 손이 비어 어색한 기분에 머리를 쥐어 뜯었다.
그래서 또 고기를 구워먹지 못했다. 정말 가까스로 물을 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컵라면으로 저녁을 떼웠다.

라면을 먹고 자서 그런지 속이 좋지 않았다.
돈은 좀 있으니까 부탄가스를 사러 갈 겸 약을 사러 갈 겸 나가보자.
역시나 찌는 듯한 더위. 평소 장이 좋지 않은 나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런 날은 몸이 따뜻해져 조금 속이 누그러지는 기분이 든다. 우리집 현관을 나와 대문을 넘어서면 바로 길이 있고 또 맞은편엔 개천이 있기 때문에 시내로 나가기 위해선 쭉 길을 걷다가 우측 골목으로 빠져야 한다. 이 골목은 이 주변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구석진 곳'의 느낌이 크기 때문에 옷을 좀 신경써서 입은 날엔 그 길을 지나가지 않는다. 혹시나 뭔가 묻기라도 할까봐. 
그 길의 절반쯤을 걸어 나왔을때, 서서히 맞은 편에서 검은 실루엣이 서 있다는걸 깨달았다. 음? 뭐야? 하면서 걸음을 계속한 난 결국 당당히 서 있는 실루엣 앞에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여어. 안녕."
"……. 우아."

어제 갑자기 사라졌던 소녀, G였다. 오늘은 짧은 반바지에 흰 티셔츠였다. 
바뀌지 않은건 그녀의 머리카락과 눈매. 그리고 느긋한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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