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2010. 12. 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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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김없이 우리는 벤치가 있는 공원으로 왔다. 그 무거운 짐들을 어서 집까지 가져가고 푹 쉬고 싶었지만, 이런 더운날 아이스크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다시 마트에 들어가 나와 소녀의 몫까지 두개를 사 들고 나왔으니, 일단 먹고 들어가자는 대충대충벌레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대충대충벌레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면 꼭 사전을 찾아보길. 절대 나오지 않는다.

 어김없이 맑고 파란 소리를 뿜어대는 분수를 바라보며 나와 소녀는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었다. 하드로 사왔다. 오래 먹을 수 있으려나 싶어서. 사실 소프트아이스크림은 이런데서 사면 맛도 없는데다가, 너무 빨리 녹아서 정신없이 먹어야 하니까 그런 여유가 없는 것이 짜증난다.
 물론 소녀는 소프트 쪽이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사 주는데 뭐라 불평하겠는가. 게다가 소녀의 관점에선 난 '목숨을 걸고 아이스크림을 조달'해 오는건데 말이다. 맛없는 팥 하드를 사왔다고 해도 그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줄 것이다. 

 햇빛이 닿는 땅은 빛이 났고, 그림자가 닿는 땅은 어두웠다. 아주 자연적인 빛에 의해 그림자와 빛의 경계가 뿌옇게 빛이 났고, 왠지 모르게 오늘 하늘은 더욱 파랗다고 느꼈다. 아까 마트에 있던 넓은 주차장에선 느낄 수 없었던 그런 상쾌한 더위였다.
 그러나 소녀의 눈매는 언제나처럼 축 늘어진 강아지마냥 멍해 보였다. 강아지는 더운날 혀를 내밀고 헥헥 거리느라 움직이기라도 하겠으나, 어째서인지 소녀는 분수대를 바라보며 혀만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다가 조용히 한번 하드를 물고. 또다시 핥고. 그런 행동의 반복이었다.
 정말 궁금했다. 마트가 왜 안되는 것일까.

 "아까 그 큰 곳이 어디야?"

 정작 먼저 말을 건 것은 소녀였고, 또 그 말의 주제가 '마트'여서 더욱 놀랐다. 이 소녀야 말로 독심술을 하는건 아닐까 싶었다. 형식적인 대답을 했다.

 "..대형마트."
 "....."

 그리고는 다시 조용해졌다. 매미가 시끄럽게 제 짝 찾느라 열심히 울어대는 이 더운 여름날. 소녀가 풍기는 이 답답함은 어쩔 수 없는것일까, 하고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리 쉽게 마트를 싫어하는 이유라던가 못들어가게 하려고 화 내는 이유같은걸 물어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나 싫어할 정도면 분명 혼자 가지고 있을 상처와 관련 된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드는게 당연한 거거든. 물론, 다행인지 아닌지 오늘따라 입을 먼저 여는건 소녀 쪽이었다.

 "거긴 사람을 아프게 하는 곳이야."

 조용히 여름 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어루 만지듯 날렸다. 금발은 은은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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