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2010. 12. 4.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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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건을 고르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도대체 소녀는 이 시원한 마트가 왜 위험하다고 말했던 것일까. 가장 보편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건, 이런 큰 마트에 대한 매우 안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쯤이려나. 왜냐 하면, 사람이란 자고로 자신이 직접 목격한 충격적인 장면은 잊지 못하는 법이거든. 

  혹시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사실 이 소녀는 매우 청결한 아가씨여서, 이런 곳에서 틀어주는 에어컨에 있는 수 많은 세균과 닿고 싶지 않았을 수 있다. 이런 곳에서 틀어주는 에어컨을 마트 주인이 수시로 청소해 줄리도 없고, 청소해 준다고 해도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해 줄지도 모를 판이다. 갑자기 불신이 마구 피어오른다. 안돼. 사람은 서로 믿음으로 인해 성장하고 넓어지는 존재이다. 안돼, 안돼.

…….
미안. 사실 여기까지는 장난으로 생각해본거야. 내가 저 소녀의 생각을 알아낼 리 없잖아. G는 분명한 전파소녀이니까. 난 그녀의 머리속을 알아낼 리 없다.




 스파게티 면과 토마토소스, 부탄가스, 삼겹살. 그리고 기타 여러가지 물품들과 채소들을 골라 산 나는 마지막으로 카운터 아가씨가 아이스크림을 담아준 비닐봉지를 입으로 물어 받고는 낑낑거리며 천천히 문으로 나갔다. 자동문이었으니까 다행이지, 어우, 커다란 비닐을 양쪽에서 하나씩 든 지금과같은 상황에 만약 수동식으로 문을 열었어야 했다면-그것도 문이 당겨야 열린다면-, 다 내팽개 치고 대신 어머니께 배달해달라고 칭얼댔을 것이다. 사실 나에게 필요한 물품은 얼마 없었는데, 타이밍 좋게도(?) 어머니께서 장을 봐오라고 전화를 하신 것이다. 왜 하필 이럴때? 하지만 잠시후 나는 그 타이밍이 우연이 아님을 짐작했다. 최근 어머니의 핸드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었거든. GPS 기능을 이럴때 사용하지 마요, 엄마.

 밖으로 나가자 다시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의 열기가 느껴졌다. 입으로는 아이스크림 비닐을 물고 있어서 오로지 코로만 숨을 쉬어야 했다. 누가 들으면 상당히 화가 나 있는 상태라고 오해할 정도로 거친 숨을 쉬게 되었다. 
 이제 소녀쪽으로 가볼까 하고 고개를 좌측으로 돌렸다. 소녀는 자판기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다가갈수록 소녀의 얼굴은 더욱 잘 보여갔고, 아주 가까이에서 그 얼굴을 확인 했을땐 왠지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그건 잠시뿐이었다. 내가 다가왔음을 눈치챈 소녀는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 거렸고, 잠시 후엔 마치 전장에 나갔다 온 병사가 다친곳 없이 물건을 잘 가져왔나 살펴보듯 이리저리 둘러보기도 했다. 걱정마 아가씨. 아이스크림은 내 입이 물고있는 비닐속에 있어. 하지만 입을 사용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런 의사전달을 전해줄 수 있을리가 없었다. 덕분에 애기때나 했을 법한 옹알이같은 소리를 나이 다 먹어서 또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아가씨는 또다시 기가막힌 반응을 보여주신다.

 "너 왜그래! 설마, 저 건물 안에서 무슨 일 당한거야?! 왜 말을 못해!!"

 손으로 자신 입을 가리며 경악하는 말투였다. 아아, 이렇게 실로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을 어머니를 뺀 다른 여성의 얼굴에서 본건 이 아가씨가 처음이다. 그래서 화가났다. 아오, 이거나 받아! 난 더욱 거센 옹알이 소리와 함께 입에 문 비닐을 흔들어 보였다. 그제야 G도 무언가 이상한걸 눈치 챈건지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뻗어 그 비닐을 조심스레 건드려 보았다. 하지만 왜였을까. 이내 두 손을 다시 자신의 가슴쪽으로 재빨리 걷어갔다. 마치 무서운 뉴스를 들은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 

 "그거 뭐야?!! 차가워!!"
 "아오! 그냥 받아 임마!!!"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어버린 나는 잠시 후 찰지게 무언가 뭉개지는 소리가 들린 바닥으로 고개를 내렸다. 소녀도 함께 그곳을 바라보았다.
 
 잠시후,
 아주 조용히 소녀가 말했다.

 "아이스크림은?"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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