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2013. 1. 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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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이 일어난다는 뉴스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저와 소녀 G는 어느 한 공원에서 만나 그 일식을 함께 보기로 했죠. 소녀는 일식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일식이 너무도 기대가 된다고 했습니다. 비록 부분만 가려지는 부분일식이었지만, 세상의 정밀성이 돋보이는 현상인 만큼, 기대에 가득 찬 눈은 반짝였습니다.


    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3분만 지나면 일식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준비한 셀로판지와 용접 마스크를 각자 들고는 조용히 태양이 잘 보일만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습니다. 바싹 마른 햇빛이 따스했기 때문에 기분이 붕 들뜨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은 옅은 수채화같이 눈 부셨고, 그렇게 하늘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얼마 남지 않았대."


    문득, 정말 문득, 옆에 함께 누워있던 새하얀 원피스의 소녀가 입을 열었습니다. 조용하면서도 다소 신중한 어투. 그러나 그 말의 의미를 알아내기엔 조금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나, 사실 눈이 점점 멀어가고 있어. 병명은 몰라. 알고싶지도 않아. 하지만 그 병이 내 눈에 있대. 그래서, 앞으로 이 눈으로는 앞을 볼 수 없을 거래."


    상당히 답답해져갔습니다. 공기가 너무 바싹 마른 것 같습니다. 숨 쉬기 곤란해졌습니다. 저는 회피하고자 말했습니다.

   

    "요즘 수술만 하면 왠만한 것은 다 낫잖아? 걱정 마. 나을 수 있을 거야."

    "시신경이 완전히 죽어가고 있대. 앞으로 빛도 못 볼거야. 앞에 무엇이 있든. 볼 수 없대."


    우리가 누워있는 자리 옆엔 분수대가 있습니다. 아무도 봐 주지 않는 분수대이지만 꽤 깨끗하게 손질 되어 있는 녀석입니다. 그곳에서 뿜어지는 물이 맞은편 풍경을 일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그냥 주변 배경들이 일렁거렸습니다. 눈물이 나오는걸 어찌 막겠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사실 눈을 보호 해야 그나마 오랫동안 앞을 볼 수 있대. 자극적인 빛을 보지 않고, 눈 속 압력이 커지지 않도록 화도 내지 말라셨어. 근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별로 그런서 신경 안 쓰여. 어차피 앞을 볼 수 없게 되는건 똑같으니까. 그럴 바에, 그 사이에 내가 보고 싶은거 잔뜩 보고 싶어."


     그 말을 듣고서, 저는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소녀를 처음 만났던 노란 가로등 아래. 그때 소녀는 그저 노랗고 벌레들이 잔뜩 날아다니는 그 빛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그 빛을 보고 싶어서 그 아래에서 가로등을 응시 했던 것입니다. 나방 소녀, 라고 놀렸었는데. 갑자기 너무도 미안해 지네요.


   


     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림자가 태양을 천천히 삼켜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 따라 주변은 어두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라져 가는 태양은 이내 전부 가려졌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부분일식이라고 보도가 난 것은 과학자들의 계산이 틀렸던 오보였습니다.


     오늘은 개기일식.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식 중에서도 상당히 별난 일식 날이었습니다.



     그 일식으로 인해 태양이 사라진 이래,

                                           소녀는 더이상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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