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 아가씨 - 도서관

2014. 3. 2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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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팽이들은 모두 학자이다. 책을 읽기 위해서 열심을 기울이다보면 자연스레 눈이 튀어나올 수 밖에 없다. 새끼들은? 음. 알 속에서부터 책을 많이 봤나보지.

 지식이 쌓여있는 곳을 그들은 좋아한다. 비가 내리는 곳 아래에서 그들은 운치있게 책을 읽는다. 지식이 자신의 머리를 채우면 그들은 행복하다.

  문제는, 그러다가 너무 심하게 행복에 취하다 보면 길거리에 나와서 유레카를 외치다가 누군가에게 밟혀 죽고 만다는 것이다. 저런저런. 빗방울에 비치는건 잠깐의 미래지향이더냐.

  그들은 죽을 때에도(이번엔 자연사이다) 지식이 있는 곳에서 죽는다. 파묻힌 채 죽는다. 그들은 그곳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다. 


  달팽이들이 느린 것은, 언제나 사고(思考)하기 때문이다. 한걸음 한걸음마다 생각을 정리한다. 그들은 사방을 돌아보며 그리 한다. 그것을 즐거워 하는데, 그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등에 있는 집은 도서관이다. 그 안에 지식이 있다. 태어날 때에 무작위로 배치되는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들은 그들의 세계를 알아간다. 그들만의 세계를 완성해 간다. 따라서 세계는 다양한 색을 가지게 되며, 따라서 세계는 다양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다중으로 겹쳐져 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달팽이들의 수만큼.

  세계는 여러개이다.


  민달팽이들은?

  그들은 도서관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들은 도서관을 다른 곳에 두고 다닌다. 자신이 언제든 들어갈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곳을 침범할 수 없다. 민달팽이들은 달팽이들이 부러워 하는 존재들이다.

  민달팽이들은 달팽이들의 미래이다. 그들이 원하는 장래 희망이다. 달팽이들은 자신들의 지식의 탐구로 더 많은 지식을 쌓아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지식을 더이상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들의 집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안착된다. 그들이 민달팽이가 된다.


  아가씨는, 민달팽이 아가씨는,

  그 민달팽이들 중 하나이며,

  그들 중 인간의 모습을 한 민달팽이들 중의 한명이다.


  그녀가 앉은 소파 위에, 천장에 달린 반지 모양의 모빌이 빙글 돌아간다.

  그녀가 앉아있는 가게의 문이 열리자, 그녀의 머리카락이 찰랑인다.


  손님을 향한 탐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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