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ING
"아오, 저 예쁜 얼굴들." 그 부잣집 아가씨가 하교를 같이 하자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미천한 서민 취급 당하던 나는 사실 이 아가씨와 친한 친구로 되어있다. 이 녀석은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미묘하지? 응. 나 지금 기분 정말 미묘해. 그런 미묘한 아가씨와 길을 걸으며 유리맛 사탕을 핥아 먹는 하교 길. 문득 그 아가씨가 한마디 툭 내던진 말이 고작 저것이다. "뭐라구요?""아오, 저 예쁜 얼굴들이라 했어요.""왜 존댓말이야. 짜증나게.""...너, 너!! 나한테 그렇게 말 할 수 있어?! 서민주제에?!!" 노발대발. 아름다운 웨이브 진 금발이 찰랑. 분홍색 머리띠. 전형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유리맛 사탕 내 놓으라 화 내는 뮤시요를 발길질로 떨어뜨려 놓고는 그대로 다시 갈 길..
하루는, 같은 반에 있는 어느 부자 집 아가씨께서 내 자이로를 보고는 콧방귀를 뀐 적이 있다. "그게 뭐니? 자.. 자이로드롭이었던가? 그런 구시대적인 물건을 가지고 놀다니. 게다가 뭐야. 거기다가 AI볼을 껴 놓았네? 아주 즐거운 모양이구나." 호호홋, 입을 가리며 웃는 그 아가씨는 자신의 어깨에 서 있는 앵무새에게 키스를 했다. 내가 알기로는 저 앵무새 머릿 속에 AI칩을 심어놓았다고 한다. 덕분에 인간의 지능만큼 지능이 향상 되었다고. 이 아가씨라는 녀석이 이 곳에 전학을 왔을 때부터, 우리반 학생들은 그 앵무새와 그런 아가씨에게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생명체의 머릿 속에 AI칩을 이식하는 일은 무척이나 돈이 많이 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AI가 세계 곳곳에서 빛을 뿌리고 다..
야한 꿈을 꾸었다.청소년이 꾸는 그 야한거 말고, 꿈 속에서 정말 '야!'하고 소리 친 꿈이었다.새 하얀 배경에,나 혼자새하얀 원피스 입고,바람 한 점 없는 그 곳에서정면을 보며"야! 야! 야!"하는 꿈이었다. 이게 무슨 개 풀 뜯어서 녹즙 빼 마시는 꿈이야?!! + 그 묘한 꿈에 번뜩 눈을 뜨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이 꿈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일어나자 마자 휴대용 뇌파 검지기를 머리에 붙였다. 오늘의 바이오리듬은 과연 어떠려나.그러나 아쉽게도 뇌파 검지기의 색깔은 탁한 회색으로 변하였다. 오늘은 그리 좋지 못한 듯 하다.하긴. 그러니까 저런 꿈도 꾸지. + 오늘은 일요일. 미스터 크리스트는 안식일이라고 지정 한 날, 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미 율법은 폐기 된지 오래이니, 안식일이란 것도 사실은 없는..
어느 여름.휴대용 슬러시 컵을 든 채로 길을 걸어 나아갔다. 아슬아슬한 곳까지 올라온 핫팬츠 마저 더웠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걸었다. 새하얀 상의는 도시 건물 곳곳에서 부는 선선한 바람에 나풀거리고 덕분에 그 바람이 속으로 들어와 시원했다. 그러나 이런 날 밖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싫다.자이로도 불평 불만이다. "금속이 팽창했어. 이대로라면 마찰계 면적 부위에 걸리는 마찰이 0.00153에서 0.0035로 증가한다고. 어서 시원한 곳으로 가자.""그러지 마. 그만한 증가는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아." 터덜 터덜.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슬러시를 한 모금 마셨다. 가슴주머니에 들어가 출렁 늘어져 있는 자이로는 이리 저리 흔들려 움직인다. 가끔씩 '중심계 이탈!'이라던가, '중립축 궤도 이탈!'이..
0# 요점은 그것이다. 초소형 AI가 판을 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겨우 자이로스코프 중심에다가 그것들을 심어놓는 실력밖에 없는 나로서는, 이 세상의 발전이 너무 빠르다. 구름은 저리도 느리고, 등굣길도 언제나 바뀌지 않는 만큼 세월의 흐름은 느릴 줄 알았거늘, 단지 30년 전의 사진과 지금을 비교 해 보면, 이 세상은 총알보다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우앗, 빨라! 남들은 막 손가락에다가도 AI를 심어놓기도 하고, 또는 뇌와 동일한 자리에 두어 좀 더 논리적인 사고를 향상 시키기도 한다. 물론 그런 것은 고급이고, 복잡하고 상당한 기계와 결합을 시켜 AI의 기능을 업그레이드 시키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도 고급은 고급이다. 반대로 나의 경우는 그냥 자이로스코프의 무거운 회전 추 중심을 파내어 그곳에..
"겨울이야." 차가운 공기는 진작부터 서성이던 어느 12월. 소녀 G는 또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다. 나는 말했다. "달력상 진작부터 겨울이었어.""하지만 눈이 안내렸잖아. 눈이 내려야 진정한 겨울이라 할 수 있는거야." 나무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고, 길에 쌓이던 눈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탓에 미끄럽게 눌려버려 총총걸음을 걷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어버린 현실이 비로소 겨울이라고 말하는 그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잉어빵을 먹으면서 같은 공기 속에서 같은 정면 분수대만 바라보던 우리는 그렇게 생각도 같아져 가고 있었다. "그렇군. 눈이 있어야 겨울이군.""응.""그럼 봄은?""봄은.. 대학 등록금 고지서?""...너무 현실적이라서 슬픈데.." 그리고 이쯤에서 생각이 나뉘어 지는군. 시린 공기가..
소녀가 말했다. "마음을 다 한다면 산도 움직일 수 있고 바다도 말릴 수 있대." 꽤나 서늘해진 가을이다. 아니, 가을도 이제 옷단장을 다 한건지 슬슬 떠나려 하는 것 같다. 그런 낙엽진 길을 걷는 나와 소녀는 조용히 그것들을 밟아 나아갔다.소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 생각하면 되는거야.""그렇구먼. 아.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 난 고개를 끄덕였고 소녀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말에 자신이 납득 한 것일까.내가 말했다. "그럼, 마음을 다 해서 산을 움직일 수 있으면…, 다른 일은 무척 쉽겠네?""하나를 알면 둘을 깨닫는구나." 소녀가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발걸음이 가벼워진건지 점점 빨리 걷기 시작한다.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마음을 다하면──" 하늘은 새 파랗고 구름..
너에게 닿기를 ...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