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bon] 4

2014. 6. 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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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이 육각형인 커다란 방이 있다. 육각형 가운데에, 그 바닥에는 유럽 박물관이나 성당을 떠올리는 눈꽃 모양의 갈색 장식들이 디테일하게 박혀 있었다. 잘 가공된 암석들이 벽을 이루고 바닥을 이루고. 견고함이 상당하다.

 어둑하고 차분한 주황빛 샹들리에가 주변을 빛냈다. 고풍스러운 공기가 흐른다. 벽에도 초가 타며 빛을 낸다. 


 사물은 관찰자의 사물 인지를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물의 유무는 의미가 없다.

 이 주변 저 주변에 걸려있는 액자들과, 이젤 위에 올려져 있는 캔버스들과, 부드러운 천이 표현된 석상과, 천장에 그려진 하늘과, 벽 기둥을 따라 올라가 있는 장미꽃과, 아름답게 옷 입고 있는 마네킹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수 많은 사진들이 방을 채울 기세로 배치 되어 있다. 이 방은 그러기 위한 곳이다. 

 그 한 가운데에, 나는 서 있다.


 우두커니 서 있으면 언제인가 너가 온다. 너는 그 방에 들어서자 마자  따각거리는 구두소리를 내며, 기분 좋다는 듯이 뛴다. 여기저기 옷에 치이는 문화들이 기쁘다. 이곳 저곳에 눈을 옮길 때마다 보이는 때깔 좋은 과거들에 만족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버지가 너에게 주신 그 방 속에서 너는 너의 세계를 꾸린다. 그 방은 이제 전문적이 되고 체계적이 되었다. 넌 너로서의 분명함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너는 너로서의 존재가 분명하다.

 아마 너는, 내가 본 어느 무엇과, 내가 본 어느 누구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있으리라.


 너가 책을 들고 읽는다. 사진을 들고 훑어보면서 웃는다. 석상의 곡선을 손 끝으로 따라가보며 감탄한다. 하늘에 그려진 하늘을 올려보며 침묵한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을 보며 무언가 말한다. 장미 한송이를 따 본다. 

 걸어보고, 뛰어보고, 다시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어 보기도 하고.

 이곳 저곳에 있는 너의 보물들을 너는 아낀다. 

 너의 시선이 닿는 그 모든것들이 점점 색을 가지기 시작하고, 점점 화려해져가서, 너가 그것에게 색을 주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것이 너무도 대단해 보여서, 나는 그런 너를 계속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그것은 분명 내가 하지 못할 일이었으리라고, 그리 직감했기 때문이다.


 난 한 가운데에 언제나 서 있다. 다만 아직은 색을 가지지 못했을 뿐.

 다만 언제나 서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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