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bon 3

2014. 5. 2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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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애니메이션의 장면이 떠올랐다. 강이 노을에 물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 장면에서, 주황색 머리의 남자는 주인공 여학생을 껴안으면서 미래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여학생은 그런 그에게 알겠다고, 금방 가겠다고, 뛰어간다고 말했다. 강뚝을 걸으며 둘은 그리 이야기 했다. 그리고는 영화가 끝난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 장면과 꼭 닮은 곳에 서 있었다. 자전거 도로로 포장 되어 있는 뚝방길 위에 서 있었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에, 검은 코트를 입고서, 하얀 입김이나 나약하게 내 뿜으며, 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서 있었다. 목도리가 없어서 그런가. 가슴이 시리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렇게나 완성된 사랑이 있었는데, 현실에서는 그저 색감 없는 현실감 뿐이다. 당연하게 헤어지고 만 것이다.


 그는 진작에 갔다. 기다리겠다는 말 한마디도 없었고, 아니 그 전에, 제대로 된 슬픈 작별 인사도 없었다. 아무런 촉촉함 없는, 푸석한 그의 목소리가 꾸역꾸역 머리에서 되새겨진다. 너 질렸으니, 잘 있어. 그 한마디였다. 

무심하기도 해라. 그런 무심함은 하루 이틀만에 완성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동안 그는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나보다. 

머뭇거림이 없는, 단 한순간에 그어버리는 검은 선. 그 선은 이제 결코 지워지지 않고, 결코 넘을 수 없다. 

지구상59억 9999만 9999명 중에서 유일하게 함께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머지 59억 9999만 9998명 중에서 내 행복을 함께할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선을 매만지며, 그저, 혹시나 끊어진 부분이 있을까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59억명은 내게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잔디가 초록빛을 반짝이던 시간이 아주 먼 옛날같다. 하지만 내 추억 앨범에는 이제 막 처음을 장식했고, 그 뒷장에 곧바로 회색빛 겨울이 장식한다. 추억은 아니지만, 언젠가 추억이 될 지도 모르니까.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할테니까. 그러나 여전히, 행복의 시작의 날은 그리도 멀다.

 다시한번 그를 떠올려본다. 하지만 이젠 뒷모습만 떠오른다. 웃는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내게는 이제 의미가 없어져서 그럴 것이다.


 이윽고 눈이 내리고 있으니, 이제 하늘이 울어도 좋다고 말하는 것 같다. 눈 오는 때는 거의 항상, 주변이 매우 조용해지고 시간도 느려지는 것 같으니까. 같은 물로 되어 있으면서, 눈은 천천히 내리니까.


 오랫동안 슬퍼하련다. 오늘은 그런 기분으로 그렇게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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