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2012. 4. 10.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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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는 점점 뜨거워지고, 주변의 공기가 새하얗게 데워져 아지랑이가 피어 올라오는 것을 맨 눈으로 보노라면, 어김없이 선선한 바람을 타고 소녀가 등장한다. 물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소녀가 서 있다는 뜻이지, 정말로 바람을 타고 날아온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스크림 사줄거야?"


 대뜸 소녀 G가 말했다. 대형마트에 들어가는 것을 그렇게나 싫어하던 소녀는 저번에 내가 무사히 들어갔다 나온 이후로는 조금 경계심이 사라진 것 같다. 물론 스스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물건을 사러 가는 것에 대해서는 극심하게 화를 내지는 않고 있다. 비록 얼마 전부터 있게된 아주 약간의 변화일 뿐이지만.


 "아이스크림?"

 "나 그 단팥 좋아해. 아이스크림도 먹고 단팥도 먹어서 이익 보는 기분이야."


 게다가 설탕이 안 들어갔는데도 달달하고, G는 이어 말했다. 나풀거리는 원피스 안에 새하얀 티셔츠를 입은 시원시원한 옷차림으로도 이 더위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듯 하다. 나도 얼마전부터 반팔이었고 티셔츠였으니까. 바싹 마른 공기에서 벗어나 나무가 뿜는 촉촉한 시원함을 느끼기엔 그림자가 너무 적었다. 지갑 사정은 무리가 없지만, 이 아가씨, 입맛이 아주머니 수준이네.


 "갔다 올까?"


 내가 말했다.

 

 "같이 갈까?"


 소녀가 말했다. 의외의 말이었다. 


"음? 너도 마트에 들어올거야?"

 "아니!"

 "...그럼 여기 있어. 금방 올게."


 변할리 없다는것 쯤은 안다. 알아. 응.



**



 날름 날름 그 조그마한 혓바닥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어가며 흥얼거리는 모습을 옆에 두고 나는 떠먹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소녀에게 먹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잠깐 단팥하드와 내 아이스크림을 번갈아 보더니 괜찮다고 사양하는 것이다. 맛을 몰라서 그러나? 다음엔 이걸 사 줘야겠다. 아마 마음이 싹 바뀔걸? 사실 일반적인 소녀 이미지는 단팥하드 보다는 소프트아이스크림 쪽이니까.


 "지금 그 노래 뭐야?"


 나는 물었다. 잠깐 눈만 이쪽으로 돌리다가 곧바로 고개와 어깨를 돌려 내게로 향해 눈을 마주쳤다. 


 "뭐가? 이건 노래가 아니고 아이스크림이라는거야."

 "응. 아니. 그거 말고. 네가 방금 흥얼거린거."

 "아. 콧노래 말한거구나."


 소녀가 계속 말했다.


 "스크램블 뮤직이 부른 [들켜버린 하트색 꿈]이라는 노래."

 "아, 그 노래 알아. 나도 mp3플레이어에 넣었어."

 "아이돌 좋아해?"

 "아니. 그건 아닌데, 이번 노래는 음악이 유독 좋았어."


 그 노래의 어디가 좋았냐면,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핑크빛 짝사랑의 느낌을 당차고 포근하게 표현한 것이 좋았다. 물론 가사는 여느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처럼 너무너무너무 '그럼 그렇지'의 느낌이었지만, 음악이 독특하니 좋았다. 음악 때문에 듣는 것 같다, 사실.


 "아이돌을 좋아한다니, M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구나."

 "아냐. 음악이 좋을 뿐이야."

 "노래 가사도 듣잖아? 괜찮아. 다 이해할 수 있어."

 "아냐, 넌 이해 못하고 있어."


 날름 날름. 소녀는 여전히 단팥 하드를 핥고 있다.



**



 선선히 부는 바람이 반갑다. 

 오늘의 하루는 사실 좀 여유롭게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일이 없는 덕에 이렇게 넉 놓고 햇살과 그림자 사이에서 그 공기의 따뜻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산책은 우리만 나온 것이 아니다. 시원한 소리를 내며 물을 뿜어내는 분수 앞으로 고양이 두마리가 느긋하게 지나갔다.


 "이 곳은 고양이가 많이 온다는 전설이 있어."

 "전설이 아니고 그저 소문이겠지."

 "그래도 전설 하면 뭔가 필연적인 것 같지 않아? 난 그게 좋아."


 소녀가 말했다. 전설이라는 말에 필연적인 느낌이 난다고? 듣고보니 그런 것 같다. 전설이라는 말이 상당히 좋아지기 시작하는걸? 필연을 그 단어에서 찾을 줄이야. 

 그런데 왜 하필 그 단어를 고양이가 지나갈 때 사용한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주 가볍게 의문을 가질 뿐이다. 그냥 그러고 말 것이다. 


 "그럼,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는 전설은 들은거 없어?"


 나는 물었다. 그러자 G는 살짝 놀란 눈을 하고 날 바라봤다. 순수하게 놀란 눈빛을 여러분은 알고 있나? 바로 그 눈빛이다.

 나는 말했다.


 "없으면, 뭐, 만들지 뭐."


 나는 손을 들어 G의 머리위에 얹어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소녀와 나는 완전히 남남이긴 하지만, 이정도쯤은 다른 사람들이 봐도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겠지. 사실 나도 매우 순수하게 쓰다듬 하고 있을 뿐이고. 그것은 아마 소녀가 가장 잘 알아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해 본다.

 어떤 마인드냐면, 가령, 길고양이를 만났을 때 조심스럽게 다가가 쓰다듬어주는 마인드랄까.


 어째서인지 소녀는 내 쪽으로 아주 살짝 고개를 어깨를 기울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콧잔등을 문질러주면 잠을 자는 고양이가 문득 떠올랐다. 

 가만 보면 이 아가씨 진짜 고양이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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