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로(Gyro) - 5

2012. 4. 6.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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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저 예쁜 얼굴들."


 그 부잣집 아가씨가 하교를 같이 하자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미천한 서민 취급 당하던 나는 사실 이 아가씨와 친한 친구로 되어있다. 이 녀석은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미묘하지? 응. 나 지금 기분 정말 미묘해. 그런 미묘한 아가씨와 길을 걸으며 유리맛 사탕을 핥아 먹는 하교 길. 문득 그 아가씨가 한마디 툭 내던진 말이 고작 저것이다. 

"뭐라구요?"
"아오, 저 예쁜 얼굴들이라 했어요."
"왜 존댓말이야. 짜증나게."
"...너, 너!! 나한테 그렇게 말 할 수 있어?! 서민주제에?!!"

노발대발. 아름다운 웨이브 진 금발이 찰랑. 분홍색 머리띠. 전형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유리맛 사탕 내 놓으라 화 내는 뮤시요를 발길질로 떨어뜨려 놓고는 그대로 다시 갈 길을 걸었다. 뒤에서 뭐라 한마디 더 던지던 그녀는 이내 다시 허겁지겁 내 옆으로까지 달려왔다. 우앙~ 귀여워!! ..짜증날 정도로. 

헉헉, 거리며 앵무새 치킨씨는 숨을 고르고 있다. 어깨 위도 그리 좋은 자리는 아닌 것 같다.



+

그래서,
아까 그 예쁜 얼굴들, 이라니?
그 말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공원 벤치에 앉아있던 뮤시요가 고개를 들었다. 아아, 이제 생각났다는 듯이 자세를 고쳐 잡고는 입을 열더라.

"왜 그 새로 오픈한 페어(pear) 블랑쉬점 앞에서 춤추던 안드로이드 말이야. 예뻤잖아? 몸매도 좋았고."

 이 무슨 아저씨 대사? 그래서. 그래서 어땠다고? 다시한번 던진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더니 고개를 옆으로 휙휙 젓는 그녀. 치킨씨도 따라했다.

"왜 저렇게 개성 없이 만들었을까? 인간이란 참 성에 약해. 영어로는 캐슬이라고 하지."

 이쁘장한 피부를 가진 안드로이드의 미모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아니면 그 외모가 부러웠던건지 모를 태도로 그것들을 까는 우리의 아가씨. 때도 아닌 바보인증만큼이나 생각 깊은 고민을 하시는 중인 것 같다. 
 잠깐 옆눈으로 그 행사장을 바라보았다. 지칠리 없는 듯한 움직임으로 춤 추며 방긋 웃는 안드로이드 로봇들. 흠~ 나는 좋아 보이는데. 쟤네들도 좋아서 저렇게 일 하는거 아냐? 로봇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요즘 시대에 저런건 당연한거지. 로봇도 이젠 자급자족 해야 하니까. 너처럼 돈이 철철 넘치는 애들이 아니라구. 돈이 없어서 편의점에 들어가 싸구려 베터리를 사가는 터덜터덜 퇴근길의 안드로이드가 주인공인 소설이 대박 터뜨린 것 처럼 요즘 사회는 무생물에게도 인정사정 없으니까. 당연히 넌 그걸 모르겠지.

"갑자기 무슨 딴 소리야. 누가 고철들의 생활을 알고 싶대?"

 미간에 주름 잡는 아가씨. 네녀석의 그 주름에 또 돈 쏟아 부을거지? 

"그럼 뭐야. 뭐가 불만인데?"

내가 물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무척이나 개성 없이 너무 얘쁘잖아. 저러니까 로봇이랑 애 낳고 싶다고 설레발 치는 녀석들도 나오지. 아기를 뱃 속에서 키우도록 만들어진 로봇은 일단 의학용이고. 그걸 잘못 사용하려고 난리 치는 변태 해커들이 다 저런거 보고 날뛰는거 아니겠냐고."

 금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아가씨의 눈빛이 꽤나 깊었다. 말 하고자 하는 내용은 도저히 내가 사는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아가씨는 아가씨대로의 고민이 있다, 이거려나.

"그래서?"
"저렇게 이쁘장한 애들이 많이 나오면, 나같은 미모도 이젠 평범한 얼굴로 기준이 바뀔 거라구. 그럼 넌 완전히 가망성 없는 얼굴이 되어버리 푸캬아앙캬악!!"

화가나 때려줬다. 때려주고 또 때려줬다. 보이지 않는 그 옆구리의 그 곳을!!
으아오 짱나!!




+

밤 8시. 내방.

"로봇들도 성적 매력을 느껴?"

하고 자이로에게 물었다. 빨간 눈의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갑자기 무슨 잡소리야?"
"그런 말은 배우지 마."
"응. 미안, 주인."

잠깐 뜸 들이고는 다시 말을 시작하는 자이로.

"성의 개념은 로봇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논리야. 이것은 아직까지도 로봇에게 주어지지 [못하는] 영역이라는 뜻이야. 따라서 로봇은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없어."
"아, 역시. 그렇군."

쿡쿡쿡, 웃음이 났다. 결국 아가씨 말 대로, 사람들의 눈에 좋아 보이라고 예쁘게 만든 거잖아. 오오, 대단한데, 아가씨?


+

심야 11시. 문득 자이로가 말을 걸었다. 하필 잠에 들 타이밍이었다.

"내 친구가 아기를 조립했어."
"....아... 그거.. 경사네.... 좋은.. 일이야..."
"주인이 그 집에 선물을 좀 사다 줘. 아기가 전기 소모 많이 할 거야."
"...네가 그걸.. 왜 걱정해.."

 인간은 결혼 하면 아기를 낳듯, 로봇은 서로 결혼을 하면 아기를 조립한다. 그리고는 성장시키면서 차츰차츰 좋은 부품으로 갈아주지. 이러면서 어른이 되는 로봇들은 자신이 일을 하며 돈을 벌어 새로운 부품으로 파츠를 갈아 끼우기도 하고, 부모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신체를 부분적으로 개조하거나 바꾼다니. 정말 좋은 방법이야.

"안 좋아."
"...왜?"
"로봇의 이상향은 결국 인간이야. 인간은 성장을 하지."

자이로의 내장 스피커에서 어려운 말이 흘러나왔다. 눈이 감기네. 아, 미안, 자이로. 그 말은 내일 들을게. 
녹음해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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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는 apple의 라이벌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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