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로(Gyro) - 4

2012. 4. 6.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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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는,
 같은 반에 있는 어느 부자 집 아가씨께서 내 자이로를 보고는 콧방귀를 뀐 적이 있다.

"그게 뭐니? 자.. 자이로드롭이었던가? 그런 구시대적인 물건을 가지고 놀다니. 게다가 뭐야. 거기다가 AI볼을 껴 놓았네? 아주 즐거운 모양이구나."

 호호홋, 입을 가리며 웃는 그 아가씨는 자신의 어깨에 서 있는 앵무새에게 키스를 했다. 내가 알기로는 저 앵무새 머릿 속에 AI칩을 심어놓았다고 한다. 덕분에 인간의 지능만큼 지능이 향상 되었다고.
 이 아가씨라는 녀석이 이 곳에 전학을 왔을 때부터, 우리반 학생들은 그 앵무새와 그런 아가씨에게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생명체의 머릿 속에 AI칩을 이식하는 일은 무척이나 돈이 많이 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AI가 세계 곳곳에서 빛을 뿌리고 다닌다고 해도, 생명이 연관 되면 고도의 기술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세상은 그런 최첨단의 현실에 순순히 흘러가고 있었다. 저 아가씨는 아무래도 그런 최첨단이라는 바다에 배를 띄워놓은 존재의 딸 정도 되겠지.

 그래서 문득 앵무새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 치킨씨?"
 "보르졸이야!"

 근데 왜 앵무새 주인이 화를 내는지.. 아무렴. 말을 이었다.

 "그럼, 보르졸."

 그러자 앵무새가 나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오른쪽으로 살짝 굴리듯 움직였다. 그래서 물었다.

 "살만 해?"

 그러자 앵무새가 답했다.

 "사회생활 해 먹기 힘든 것 같아."



 +



 자이로와 함께 옥상 위로 올라 왔다.
 
 "사회 생할은 인간의 특권이다. 그걸 앵무새가 어찌 감당 하겠어."
 "그보다, 저 앵무새는 도대체 어떤 사회 생활을 하는걸까."

 지익, 지익.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를 내면서 자이로가 핑그르르 돌았다.  미미하게 바닥으로 내리 깔려지는 바람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멍하니 저 너머 산을 바라 보았다. 산을 살려야 한다는 외침은 언제나 묵살 당한 채 오늘도 산은 언덕이 되어간다. 어제도 산 하나가 사라졌지. 이게 뭐야.



 +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체육관으로 모였다. 체격검사가 있는 날이었다, 사실.
 아아 어머니. 어머니의 딸은 올 해도 성장하지 못했어요.
 키도.. 그리고.. 네..





 +

 "포르조사의 법칙. 레르코사. 에테르 AI 조작법. 에테르 AI 조작법. 에테르 AI 되는 법."
 "얘 뭐래."

 책상에 앉아 책을 보다가 옆에서 자이로가 떠드는 것을 알아챈 나는 맨 마지막에 같은 말을 반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테르 AI가 되고싶은가보다.

 "플라즈마 분체기를 쓰면 3000배는 커질걸? 아. 대신 퍼지면 안 되니까 로렌슘 비닐에 들어가 있겠지만. 나름 고압축의 튜브 안에 들어가겠지."
 "에테르 AI가 되려는게 아니야, 주인. 사실 될 수도 없잖아."

 빙글빙글 돌다가 문득 멈춰 서는 자이로. 붉은 카메라를 내 눈과 맞추었다. 유독 렌즈가 빛났다.

 "그럼 뭐야. 뭐하러 떠들어. 조용히 해."
 "칫."

 자이로가 카메라를 저쪽으로 돌렸다. 2003년대에 만들어진 초 구식 컴퓨터가 영어 예문을 읽는 듯한 딱딱하고 맛 없는 소리.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고 정말 오리지날 100% 기계음으로 만들어진 '언어소리'였다. 그런데도 자이로의 '칫' 소리는 일품이다. 제대로 감정 전달이 되어 오니까 말이다.

 "뭐야. 그럼 아까 한 말은 뭐야. 왜 그런건데."

 그 말에 다시 한번 눈을 마주치는 그. 감정이 들어가 있을리는 없는데도 자이로는 차분히 대답했다.

 "주인, 나도 꿈 정도는 선물 받을 수 있어."



+

자기 전에 확실히 해 둘 것이 있다.
일단, 자이로는 남자로 되어 있다.


그럼 오늘의 일기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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