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 200 (초고)

2019. 10. 2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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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몸이 지쳐 있던게 문제였을까. 지주는 결국 다음날 일어나지 못했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몸이 바르르 떨릴 정도로 추웠기 때문이다.
테라타는 처음엔 병문안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주의 심각한 상태를 보고는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었다. 몸살이든 뭐든, 일단 병원을 끌고 갔다.

피를 한 바가지 쏟을 것처럼 기침을 해대는 지주는 테라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주사를 맞고 약을 탔다. 의사가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의식이 몽롱해서 자신이 지금 들은것인지 아닌지 조차 분별하기 힘들었다.

테라타는 초조한 기분만 엄습해 오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지주의 옷들을 갈아입히고 그대로 침대에 뉘였다. 뜨겁고 습한 날숨을 몰아 쉬었다.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 속에서 가까스로 눈을 떠보였다.

"고마워."

지주가 말했다. 테라타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엄습해 오고 눈 앞은 캄캄해져만 갔다. 그 덕에 몸은 무리를 하고 말았고 정신은 주저앉고 말았다. 가만히 서 있는데, 세계는 꼬여가고 지주는 중심을 잃었다.
왜 그렇게나 자기 제어가 되지 못했나. 깊은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아아. 아직도.


 




지주가 눈을 떴을 땐 새벽이 한참 깊어진 4시 53분이었다. 온 몸에서 흐른 땀 때문에 기분이 좋지 못했다. 아직도 근육은 떨리고 뼈 사이사이가 시렸다. 추웠다. 겨우겨우 정신만 되돌아 왔다.
테라타가 옆에서 자고 있다가, 지주가 일어나며 만든 미세한 요동에 화들짝 일어났다. 깜짝이야. 둘은 동시에 말했다. 지주는 테라타의 급작스러운 기상에. 테라타는 지주가 굴러떨어진 건 아닌가 하며.

"...미안 깨웠어? 옷을 좀 갈아입고 싶어서."
"괜찮아?"

창문 너머에서 들어오는 귤빛이 뿌옇게 둘을 비췄다. 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네가 날 살렸어. 고마워."
"아 언니, 진짜 너무 무서웠어. 놀라게 좀 하지 마."

이불이 말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라타가 몸을 웅크리며 다시 누웠다. 미안해. 고마워. 미소 섞인 대답을 하며 지주는 장롱이 만든 검은 그림자 속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무엇에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테라타는 얼추 알듯 했다. 이 거미는 인연을 너무도 아껴서, 그 어떤 한 가닥도 스스로 끊거나 하지 못한다. 사실, 이유 없이 자기 거미줄을 끊어버리는 거미란 존재하지 않을것이야.
그걸 이해하니까, 기분이 복잡해진다.
나는 언니만 행복하면 그걸로 좋은데. 바보같은 언니. 테라타는 생각했다.

"옮길 위험은 생각도 않고 옆자리에 누워서 잠든 너는 바보 아니고?"

지주가 테라타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생각이 말로 새나왔나보다. 그녀는 뭐가 그리 웃긴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테라타는 그런 지주의 모습에 더더욱 심통이 났다.
정말이지!
테라타는 지주 옆으로 더 붙었다. 지주는 테라타를 밀어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잠을 자기로 했다. 요 며칠은 무리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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