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 3

2017.04.03 03:11


거미 3



 나는 이전부터, 옆 집 남자에게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왜 내 팔이 그에게 보였고, 그는 어떤 이유로 내 팔을 잡을 수 있었을까. 보통이라면 그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것이었을 터인데. 하긴, 그 사람을 보통이라 말하기엔 터무니 없이 낙천적이긴 했다. 낙천 속에 어떤 비범한 능력이라도 있었던 게지. 농담이지만.

 그런데 이게 나를 여간 피곤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 고민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그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혹시 그에게는 내 눈들도 보이는 것일까. 이 의문이 언제부터인가 나를 걱정 속에 살게 하고 있다.


 사실 그가 지금 내 눈의 존재들 -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내 나머지 6개의 눈들 - 을 눈치채고 있다면, 지금까지 그와 함께 지내오던 동안 나는 분명히 그의 눈치챔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월이란게 지나면서, 지혜는 내 눈 한 쌍에 독심督心 마음을 살핌을 일깨워 주었다. 백지에 떨어진 선명한 흙탕물 만큼 뚜렷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사람 마음을 훑어볼 때면, 요컨대 잔뜩 뒤흔들어 놓은 흙탕물을 보는 것 처럼 느낄 때가 많다. 그리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무질서함으로 채워져 있다, 보통의 사람들 마음은. 그러니 사실 읽어낸다 말하는게 웃길 수 있겠다.), 한 순간 동요되어 이는 물결을 발 끝으로 느껴 삼라만상을 분별하던 옛 시절만큼은 해 낼수 있기 때문에, 그 남자의 심적 동요 또한 포착해 낼 수 있으리라. 무엇때문에 그리 휘청거리는지 또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아낼 수도 있을 터이고.

 그리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그에게서 그런 심적 동요를 파악해 내지 못했던 건, 즉, 그에게 내 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런지. 내게 그의 마음을 느끼는데에 문제가 없다면야.

 그가 내 눈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까? 나 자신에게 짖궂지만 괜스레 한 번 과거를 곱씹어 본다. 경험상 '아마' 그것은 나와 그 사이가 뒤틀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보이지 않는 눈이 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나 자신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내 눈을 써먹어 다른 사람을 속여 사기를 치려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그들을 언제 어디서든 지켜볼 것이라는 두려움에 나를 불신하는 사람도 있었다. 뒷 골목에서 악행을 일삼던 사람들은 내가 그들에게 위험이 될까봐 나를 되려 위협하였고, 그런 위협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곤 했다.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 앞에서 내 '보이지 않는 눈'은 언제나 감겨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관찰한다던가 하는 생각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누구도 잘 믿지 못해 항상 모든 눈을 뜨고 있지만, 예전의 나는 참 착했던 것이다. 육안으로 보이는 그대로 믿고 싶었던 것이리라. 친절하게 웃어주는 그 사람을 친절하다 믿는 것은 대단한 믿음이다. 대체 무슨 보증으로 상대방이 친절하다 믿어버렸던 것일까. 독심의 눈을 가진 후로도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데. 하기사, 어쩌면 믿고싶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으로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기도 했고.

 마음은 참 유치하면서도 원시적이며 간사하고 비이성적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마음을 믿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리 좋지 못한 결론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은 사물을 간절함으로 빚어내고 절실함으로 두텁게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본인의 눈에 달콤하게 보일 것이 분명하다. 만약 본인의 마음을 향해 헛웃음이 나온다면, 그것은 그나마 마음과 지혜가 조화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그런 사람은 고사하고, 진흙을 침전시키고 맑은 물을 띄우기 조차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닌가. 마음이 고요할 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인지 내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럼, 옆 집에 사는 남자도 마찬가지라는 거야? 나는 내게 물었다.

 마음에 대하여 주저리 써 내려 간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그가 내 눈들에 대해 알고 나서도 내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 믿으려 하는 것인가. 그 믿음은 분명 내 멍청한 마음이 바라는 바일 것이고, 나는 거기에 온전히 놀아나고 있는 것이리라. 

 본디 그런 거 아니겠어? 누군가와 친해진 뒤에는. 외로움이 한 몫을 하는 것이겠지. 또다시 혼자로 돌아가기 싫으니까.

 그러니까 마음이란 어린아이처럼 여리다 하는 것이다. 진절머리나게 나약하다. 아주 오래 전, 혼자 있는 것이 외로워 조금이라도 환심을 사고파 내 눈에 대하여 멋대로 알려주던, 그런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내 눈들, 본 적 있어요?" 라고 물어봐야겠다는 것이다.
 '이래도 나를 평소처럼 대해줄 건가요?'라고 묻지는 못하겠고, 차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문[文] > 단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1001  (4) 2017.10.01
거미 - 4  (0) 2017.09.02
거미 - 3  (0) 2017.04.03
거미 - 2  (0) 2017.03.24
수치심의 문화와 죄의식의 문화  (0) 2017.01.24

BELATED ARTICLES

more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