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캡 모자를 다시 썼다. 같이 걷기로 한 것이다. 아침부터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싱그러운 그림자를 밟아가는 나와 소녀. 왼쪽으로는 마을을 구분짓는 개천이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낮은 울타리의 집들이 지나간다.
마음에 걸린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번에도 혼자 두고 갈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어…물론, 그냥 무시하고 가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우리 둘은 꽤 말을 섞어버렸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엮여버렸다. 맙소사.
G는 여전히 다리쪽을 바라보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조금 다가가보니 G는 어제 자신이 앉아있던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리 아래. 어제 이 소녀는 낚시같은걸 하고 있었다. 난 뒷통수만 긁었다.
그렇게 5분 후. 그러고보니, 난 산책하러 밖에 나온 것이었다. 소녀는 어제 내가 떨어졌던 그 다리를 쳐다보고 있다. 말 안하고 가도 될까 싶어서 발걸음을 떼어보았다. "너, 어제도 날 혼자 놔두고 갔지?" 소녀의 한마디에 난 뒤돌아보았다.
M이라고 소개한데는 그다지 이유가 없다. 그저 맞장구를 쳐주고 싶었던 것 뿐이다. 소녀, 그러니까 G의 반응이 매우 진지하고 신중했다는 것만 빼면 간단한 장난이었다. "내 예상이 맞았어." 소녀의 한마디에 당황하는건 내 쪽이었다.
그러고보니, 우린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 "이름이 뭐야?" 라고 내가 물었더니, "G." 라고 소녀는 간단히 답했다. 잠깐만, 이름이 G라니? 이니셜인가? 궁금증은 더해오고 있는 와중 소녀가 날 쳐다본다. 그래서 "난 M." 이라고 답했다.
내 궁금증을 물어보자, "반말? 아. 안되는거야?" 진심으로 되묻는 소녀. 그 눈빛때문인지는 몰라도 오히려 내가 째째한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우아, 이녀석, 의외로 선수일지도 모른다! 나는 안된다고 말 하려다가 그냥 포기했다.
소녀에게 물었다. 캡 모자를 벗은 소녀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 아마 자스민일거야. 향이 좋잖아." 이런 아침에 마시기엔 너무 뜨겁지만, 이라고 소녀는 덧붙였다. 하지만 미안하다, 소녀여. 난 갑자기 네가 왜 반말을 하냐가 궁금해졌다.
우린 사실 햇빛 아래에 서 있었다. 왠지 말동무 친구로서는 좀 어려보이긴 했지만 여튼 우린 나무 그늘 아래로 이동했다. 생각해보니, 왜 그리도 위화감같은게 없었는지 궁금하다. 어제 마셨던 차의 효과인걸까. 근데 그건 무슨 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