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다리-TN]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버린다고는 하지만, 쓸 만한 것을 버리는 것은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매우 부유한 시대로서, 솔직히 돈만 벌면 뭐든 살 수 있고 할 수 있는 시대이다. 또는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지. 그러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절약이라던가 실용성에 대한 생각은 많이 사그러든 것 같다. 이젠 100원짜리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 사람들이 허다한 데다가, 요즘 누가 헌책방에 가냐며 수도권 지역에 있는 커다란 서점에 찾아가 유명 작가들과 악수나 하고 앉아있다. 문화의 질이 좋아진건 사실이오나, 그것으로인해 '평범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괴(自壞*)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이미 '우..
그러고 얼마 더 있다가, 우리는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각자 갈 길을 갔다. 그때가 정확히 10시 반이었다. 오전 시간을 꽤 평화롭게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았을때, 소녀는 어째서인지 가던 길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었던걸까 하고 나도 조용히 그쪽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마음속 어디선가부터 들려온 예상대로 마네킹처럼 우뚝 서 있는 채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 그냥 손만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소녀는 잠시후 조용히 손을 흔들어 주고는 가던 길을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오늘 할 일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냉장고가 비었으니 장을 보고, 이웃 집 아저씨 일을 좀 도와드리고, 블로그 광고도 조금 관리 하고. 오늘은 대충 이런 일이려나. "자 그럼, 빨리 시..
"너, 여유로운거냐, 할일이 없는거냐?" 돌연 던진 내 질문에 소녀는 응? 하고 시선을 마주쳤다. 싱그러움이 바람을 타고 천천히 흘러만갔다. 아침의 여유마저 느껴진다. "아, 나한테 질문한 거였어?" 그리고는 캡 모자를 벗는 소녀가 이제야 알아차린듯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이 벤치엔 나와 소녀밖에 없다는 것에 유의하자. "어젠 길을 가다가 낚시방송이 생각나서 낚시를 했어. 그 전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그 전엔 고양이와 싸웠어. 분명 내 생선이었는데 녀석이 자기 것이라고 우겼거든." 불만이었던 건지, 고양이 이야기를 할 때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고는 결국 자기가 이겼다며 좋아했다. 소소한 것에 행복을 찾는 넌 혹시 현자이더냐. "결국은 할일이 없다는 거로군." 그리고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