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캡 모자를 쓴 소녀가 인사를 하고 이어서 나도 고개를 숙였다. 다시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을 때는 소녀는 왠지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분명한 맑은 아침. 난 소녀를 만났다.
"어제는 놀랐어. 하지만 자살하려면 그런 쪽이 아니라 건물이 확실해." "아니, 인사를 하라고, 인사를." 소녀의 눈엔 내가 삶을 포기하려고 한 것처럼 보였나보다. 하지만 난 그쪽이 아니라 인사쪽을 딴지걸었다. "아, 맞다." 소녀는 말했다.
"오, 감기는 안 걸렸나보네." 무덤덤한 목소리, 멍한 눈의 소녀. 허나 관심을 가져주는 그녀가 고맙지도 않고 오히려 얼떨떨하다. "인사가 먼저잖아." 내가 말했다. 마치 예전부터 친했다는듯이. 그러자, "아참. 그렇지." 소녀는 말했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군데군데. 아아, 햇빛마저도 투명한 아침이다. 매일 산책을 하곤 하지만 오늘의 하늘은 각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있는 소녀를 만났을땐 조금 움찔했다. 왜지? 이런 좋은 하늘 아래 이 소녀를 만난것 만으로..
다음날. 혹시 나라는 녀석은 바보가 아닐까 할 정도로 건강한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 집에 오면서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을 했는데, 전혀 이상이 없어서 다행이다. 오전 9시 47분에 일어난건 조금 안타깝지만. 산책이나 갈까.
결국 단숨에 차를 들이키고는 곧바로 잔을 돌려 주었다. 소녀는-자세히 보니 역시 소녀였다. 소녀가 이런 시간에 낚시라니-자신의 옆 가방에 잔을 넣고는 그대로 가방을 닫았다. 난 조금 어색하게 인사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차를 마시자 순간 입안에 향기가 한가득 찼다. 그리고 목으로 넘기자 온 몸이 스르르 풀려 녹았다. 뜨거운줄 알면서도 벌컥 마셨다. 계속 날 쳐다보는 소녀는 빨리 컵을 돌려받고 싶은지 손을 계속 내밀고 있었다.
..라고 생각한 그때, "이것 좀 마시고 몸을 녹여요." 무덤덤하고 조용한 여성이 나에게 보온병에서 따른 차를 내밀었다. 눈이 마주친 나와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난 그냥 조용히 잔을 받았다. 노을에 역광된 그녀가 보였다. 눈만 반짝인다.
풀이 열심히 자라는 여름이라지만, 때 늦은 물놀이가 끝나버린 지금, 바람이 불 때마다 무척이나 추웠다.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다가 이내 재채기를 쏟아버렸다. 집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니 소름마저 돋는다. 늦기 전에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