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글 - [키친]

2016. 7. 2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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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펑펑 울것 같던 하루가 지났다고 생각 했는데, 아직 밤 10시도 되지 않았다. 눈을 팟 떴을 땐 온통 어둠 뿐이었다. 5시 쯤에 자기 시작했으니까, 5시간도 채 자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대로 가다가는 온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와르르 무너지는 내 몸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물론 비현실적이니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른 시간이지만 거실도 어두웠다. 보이지도 않는데 주위를 두이번 거리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이젠 나 혼자 뿐이다.

 

 방 하나에 거실 겸 부엌이 있는 집에, 나 홀로 이런 방을 맞이한지 어느덧 열흘이 넘어간다. 달이 기울며, 나는 지쳐간다.

 이젠 그 어느것도 미련으로 남아있지 않다. 엄마와 아빠가 법적으로 날 버린 것이 법적으로 인정된 그 날부터, 인생사──── 이젠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즐길 필요도 없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오락거리는 있을 수도 없는 하루였다.

 그렇게 열흘이 넘어가고 있다. 이젠 정말 혼자인 것이다. 

 

 부엌쪽에 형광등을 켰다. 창백한 형광등 빛이 스테인레스 냄비를 차갑게 빛나게 했다. 

 벽에 걸려있는 주걱은 맥없이, 국자는 무겁게, 행주는 매마른 상태로 방치된지 오래인 듯 했다. 싱크대 안도, 비어있다.

 엄마한테 이젠 요리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아빠한테 돈을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이젠 나 혼자 살아야 하는데, 언제까지 울먹이며 계시지도 않는 두 사람을 찾아야 할까.

 

 조그마한 냉장고에서 달걀 두개를 꺼낸 뒤에, 밥그릇에 깨 담았다. 젓가락으로 간단히 휘저었다. 소금도 약간 뿌리고, 후추도 약간 뿌렸다. 다른건 필요없기도 하고, 사실 그 이상 무언가를 넣을 줄도 몰랐다. 익숙한 걸 좋아한다.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안정된 걸 좋아한다. 안정을 좋아하는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부었다. 익어가는 소리가 순식간에 집 구석구석을 채웠다.

 형광등 빛이 노랗게 물드는 기분이었다. 기름이 튀는 소리가 익숙했다. 

 그러나, 낯설다.

 

 달걀이 익는건 금방이다. 나는 접시에 둘둘 말아낸 계란 말이를 담았다.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젓가락으로 잘라먹었다. 맥주 한모금 마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홀로 살게 된지 열흘이 넘어간 지금 시간 12시가 되었다. 

 참았던 울음이, 이제서야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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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0에 저장했던 아이디어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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