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범죄자라는 표현의 사용

2016. 7. 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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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 질환자'라 칭해졌던 어떤 범죄자가 [이번] 사건을 일으켰을 때, '정신병자에 의한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그 주장에 대립되는 어떤 이들의 세력 만큼이나 강하게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상황에, '정신적 질환을 가진' 다른 한 사람이 나타나서는 이처럼 말했다.
 
  나는 약도 먹고 일반 사람처럼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이번 사건의 범죄자가 '그가 정신병자라서 죽였다'고 말하는 것은
정신병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말하는 것과 같다.
  난 안 그런다.

  정확한 워딩은 찾을 수 없어서 링크를 걸 수 없었다.

  이 상황을 보며, 의미를 분명하게 알고 사용해야 할 이른바 '정확한 표현'들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게 되면, 문제의 본질과는 관련이 없는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억울하게 모두 한 통속으로 묶어 버리는, 그래서 다 같이 묻어버리고 비난하고 마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의 심정을 존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그들이 억울해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이 글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말의 사용과 관련된 개인적인 생각이다.

  (단순히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를 보는 것이 기분 나쁘다'며 화 내는 사람들을 커버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표현을 매우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맞다.)

  잠재적 범죄자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과 같은 상황이 상대방을 '잠재적 범죄자'로서 인식했을 때에 나타나는 잘못들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

  어떠한 이유로 집회가 열렸다고 하자. 경찰은 그 모임에서 불법이 행해지지는 않는지 감시하게 된다. 그 때 그들은 '채증'을 하기도 한다. 불법 행위에 대한 증거를 모은다는 뜻이다.

  > 경찰법 제 3조 - 범죄의 예방, 진압 및 수사, 치안 정보의 수집 작성 및 배포를 국가 경찰의 의무로 언급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한다.

  > 경찰청 예규 제472호 "채증 활동 규칙"에서, '각종 집회 시위 및 치안 현장에서 불법 또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을 촬영, 녹화, 녹음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요컨대 집회 참여자 중에 상습 시위꾼이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자들을 법정에 세워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주변에서는 이 행위들에 대하여 경계의 목소리를 올린다.

  > 2015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을 확대해석 해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며, 초상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제도 개선을 권고 하였다.

  > 경찰 채증, 로스쿨생들에게 멱살 잡히다 (뉴스 기사는 여기로)
    연세대 로스쿨 학생 네 명이 경찰의 무분별한 채증행위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출한 것이다.

  공통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두 표현, 즉 '확대해석'과 '무분별한 채증행위'.


  그들은 왜 그 점을 걱정 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과도한 채증행위와 같은 '과잉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그들은 왜 그렇게 과잉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것일까. 문제가 나타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거기서 나타난 것이다. 즉, 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보니, 시민들에게 위험을 가져다 줄 모든 사안들에 대하여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위험한 존재들의 행위들을 증거로서 남겨두기 위해 하는 채증들이 오히려 시민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많은 자유들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로스쿨 학생들은 위법성을 지적했다. 링크 걸린 기사를 읽어보면 로스쿨 학생들의 몇가지 근거와 주장이 나오지만, 이 글의 논점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그들의 결론을 간단히 말하자면 "채증 등의 강제적 성격을 갖는 국가공권력의 행사 공공의 안녕에 대한 침해가 현저한 상황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배웠다는 것이다.

  문득 든 의문점은 두가지.
    경찰측은 집회 참여자들이 '공공의 안녕에 대한 침해가 현저한' 행위를 한 것을 확인 했기 때문에 채증을 한 것일까.
    아니면 그럴 여지가 다분해 보였기 때문에 채증을 한 것일까.

 

 

  뜬금없지만 이쯤에서, 이 글에서 본래 하려 했던 이야기로 돌아오자.
    후자의 경우는 집회 참여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본 사례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가.

 

 

---

  미국에 총기 사건이 났을 때, 한 유명인(이라고만 표현해 두겠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총기를 사용한 범인은 미친 인간이었다!

- 정상인들은 모두가 총을 소지하고 다녀도 쏘지 않을 것이다!

 

- 정신적으로 병든 인간이 문제다!

 

  당시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정신질환자였기 때문에, 그 유명인은 그와같이 말했다고 한다. 당시 총기 소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올라온 이유도 이것이었다. 아마 총기 소지 찬성하는 사람중에 저 유명인을 동조한 사람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당시 범인은 정신질환자, 위의 표현대로라면 '미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우려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필요한 조취로서 '그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던 것 같다.

  대한법무연수원이나 대검찰청의 분석들을 보면, 엽기적인 중범죄가 정신질환자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출처를 넣으면 좋겠다.)
  정신질환자들과 범죄율의 연관성은 약물치료 효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저명한 의학 잡지에서는(출처를 넣으면 좋겠다.) 정신 치료제가 범죄율 저하에도 주목할만한 효과를 보였음을 입증 했다 설명했다. 질환의 재발, 증상 완화와 더불어 폭력 범죄의 발생률 저하까지 영향을 준 사례를 들며, 정신질환의 전형적인 증상과 공격적 성향들 모두 약물과 입원 치료로 조절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 점들은, 맨 위에서 말한 [이번]사건이 '약도 먹지 않아 난폭하고 공격적이게 된 환자가 저지른 사건으로 봐야한다'고 결론에 힘을 실어준다. 

 

  그런데, 그 사실이 '정신적 질환자들의 통제'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정신질환자에 대한 '이미지'는 과연 정신질환자 그 자체를 그대로 묘사한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 낙인일까.
  초반에 나왔던 어떤 정신질환자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그는 약물 치료를 받고 있고 정상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반적인 '환자'는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한 노력이 없었던 사람을 일반적인 환자와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사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제외하고는 공격성, 잠재적 범죄를 '일반적인 증상'으로 하는 정신질환은 없다고 한다. 
  일부 질환을 가진 일부 환자가 일시적으로 조절되지 않은 공격성과 충동성으로 위험한 성향을 보인 것이 정신 질환 전체의 이미지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무서우면 과장 되는 법).

  한 연구에 따르면(출처를 넣으면 좋겠다.) 조현병 환자에게서 보여지는 충동성과 공격성은 그 질환 자체의 망상이나 환청으로 인해 생겨난다기보다, 감정적인 충동성, 즉 '욱하는 마음'을 조절하는 능력에 대한 '조절 장애'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문제들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치료 받아 조절될 수 있는 것들이며, 만성적 질환의 하나일 뿐이다. 

  유명인이 외쳤던 '미친 사람'이라는 말의 '미치다'라는 표현은, 너무도 광범위하다. 조금만 집중력이 높아도 여러 근거를 제시 하면서 미친 사람으로 만들 수 있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욱하는 마음을 조절 못하는 장애'를 '미치다'는 표현으로 퉁쳐서 사용했을 때 생기는 피해를 잊어버리기 쉽다. 설득력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조현병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부 공격성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처럼 소위 '미쳐서'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말은 정확하지 않다. 오해를 낳는다. 그들은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을 주기적으로 투여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것처럼, 꾸준한 치료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험하다 판단하여 통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뜬금없지만 이쯤에서, 이 글에서 본래 하려 했던 이야기로 돌아오자.
    정신질환자를 통제하려는 논리는(여기서의 통제는 정신질환의 복지의 성향을 띤 것이 아닌, '억압'을 연상시키는 통제) 정신질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본 사례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가.

 

ps1. 따라서 유명인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폭력적이다.
ps2. 그(He)의 언사로 인해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 

  결론.

  잠재적 범죄자가 어디에 많은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생각해 둔 바는 있지만, 신중해야 할 부분이다.

  특정 사람들에게서 매우 많은 피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들이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임을 무시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잠재적 범죄자라는 표현을 그리 쉽게 정당화 하여 섣부르게 사용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본다. 너에게 범죄자로서의 자질이 숨어있다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그에게도 쉽게 그리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잠재적으로 공포감을 줄 여지는 있겠지만[각주:1], 그렇게 쉽게 상대방에게 범죄적 특성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 버리는 것은, 어떤 유명인과 어떤 공권력 행사자들(??)의 논리와 그다지 다를바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외침'을 죽이라는 것은 아니다.

  외칠 때, 표현을 신중히 쓰자는 거지.

 

 

 

  그냥 그렇다고.

 

 

 

 

+ 2020.1.22

 위에서 나는 글의 종반에서 [그렇게 쉽게 상대방에게 범죄적 특성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 버리는 것은, 어떤 유명인과 어떤 공권력 행사자들(??)의 논리와 그다지 다를바 없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상대방을 단정적으로 그와같이 짐작함을 넘어서서 특정짓고 확정시 하는것은 여전히 매우 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 주변에서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는 폭력과 범죄에 대놓고 노출되어 있는 약자와 피해자 그리고 당신이 가지고 있을, 수많은 경험과 목격으로 만들어진 무의식적 경고 - 소위 말하는 쎄 한 느낌 - 이, 온전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또 신뢰한다. 그 느낌은 결코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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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의사와는 상관 없는 공포감을 상대가 느낀다 하더라도,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덩치 큰 사람 옆에 서면 위압감이 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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