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cil Patrick - 꿈 현실 꿈 현실

2015. 3. 2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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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리나는 명확한 눈빛을 가진데다가 점잖은 목소리로 조목조목 말할 수 있는 아가씨였다. 그녀의 성품에서는 묵직한 양장본과 같은 고풍스러움이 전해졌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처음 조수로 일을 하러 왔다 말했을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광고는 신문에 단 한번 실은 적이 있다. 집안이 서류들로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로 일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올 줄이야.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는 가정교사로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좋은 취급을 받는 직업은 아니었지만, 그런 현실과는 전혀 상관 없이 매우 그녀다운 직업이었다. 홍차를 마시며 그 이야기를 듣는데, 그녀의 진취적인 사고방식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재밌는 사람이었다.


 여성들이 점점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꾸어 가고 나타내어 가고 있는 요즘, 나는 그녀의 그런 발걸음이 당차다는 것에 좋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이끄는 그녀의 인생이 너무도 분명한 색채를 가지고 있어서, 만약 어느 누군가가 그녀의 옆에서 나란히 걸으려 한다면 분명 그 색이 옮아 본인의 색이 변질되고 말것이라 생각한 나는, 그녀가 내 조수 역할의 일을 하고는 있지만, 어떠한 식으로든 그녀가 내게 또는 내가 그녀에게 각자의 삶을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녀의 삶이 분명 만족스럽다 말했기 때문이고,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 한 서로의 삶은 변질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서로의 인생은 서로의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녀의 태도 하나 하나 모두, 다른 여성들은 생각치도 못할 어떤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까지 주변의 모든 것은 여성들에게 '여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본인들의 삶을 영위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많은 젊은 여성들은 그 환경의 문제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꼭두각시처럼 웃고만 있을 뿐이다. 스스로 그런 삶을 선택한게 아니라면, 눈물나게도 아쉽고 슬픈 일이다. 그들도 그들의 원하는 색채를 고를 권리가 있을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끔 하고 있는 나 조차도, 여성들을 대할 때에는 여타 다를바 없는 신사의 버릇들이 나오곤 한다. 내가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을 보호하거나, 그들에게 조언할 수 있다고 여겨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잘 됐다. 셀리나가 이곳으로 와 준건 내게는 축복이다.


 낭만적인 세계는 죽어가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 흐름에 맞춰 발걸음을 정비해야 한다. 세계는 마치 기계처럼 하나하나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의 덩어리였다. 그것을 깨닫는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만을 입에 담는 행동은 시간이 너무 아까운 일이다. 이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셀리나가 내 친구로서 나와 같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아끼지 않을 수 없었고, 

 나는 그녀가 나로인해 어떤 해를 입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서로에게 관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했다. 

 사실적으로 내 일의 위험성을 설명했지만 그녀는 조수를 그만두지 않았다. 일 하는거라고는 서류관련 정리뿐이었고, 그런데도 보수가 다른 곳에 비해 매우 많았다는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돈 벌어서 뭘 할거냐고 질문했더니, 그녀는 올곧고 과장되지 않은 목소리로 그러나 자신있게 말했다. 

 "내가 본 것을 책으로 쓸 거에요. 가감없고, 편견 없는 서술로. 어느쪽도 무시되지 않는, 그러나 또한 나를 열등감에 빠뜨린 것 처럼 보이지 않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식의 그런 주장이 담긴 책을요. 그걸 여행을 통해 알아낸 여러가지 이야기로 엮는거죠."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찻잔을 놓칠뻔했던 그 때를 잊지 않는다. 감동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한편으로는, 그녀와 함께 언제까지고 살 수는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씁쓸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녀의 그런 구체적이고도 에너지 가득한 미래를 꼭 이루어 나가기를 바랐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그녀를 더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저하게 나뉘어져야 할 인생을 각오함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언제나 그녀와 함께이길 바랐다. 욕심을 부려보는 것이다. 그녀는 내게 매우 과분한 사람이었음을 만인이 인정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높은 곳에 달려있는 열매를 원한다. 그녀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결코 낭만에 그치지 않을것이라 확신했다. 그런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럴리 없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쩔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내가 처음 서툴게나마 낭만을 원하게 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내가 그녀에게 조금씩이나마 마음속으로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게 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그녀는 현실에서도 그러한 만큼 미래 또한 빛나지 않을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괜히 기대감에 부풀어 웃음짓고 다니는 원인이 아닐까. 칙칙한 문을 열어 들어가면, 깔끔한 책상 위에 서류를 올려두고 있는, 검은 정장 치마와 와인 색 블라우스를 입은 셀리나를 보게 된다. 그녀가 웃으니 나도 웃는다.




 비오는 날 셀리나가 물이 고인 바닥에 구멍난 자루마냥 힘없이 널브러져 죽어있는 것을 보았을때, 세계가 하나 무너지는것을 두 눈으로 보았을때 나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거짓말로 꾸며진 뒷거래가 들킨 것이다. 그녀가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던 그 일이 들킨 것이다. 그녀 가슴에 올려진, 깊게 찔린 칼 옆에 놓여있던 깨진 시계가 그것을 의미한다. 그 아래에 깔려있던 젖은 종이에 번진 글자가 의미없이 휘갈겨져 있었다. 진짜를 가져오라는 글이 적혀있었지만, 내게는 의미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 나 대신 그녀를 끌고가 죽였으나, 그들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러니까, 그것들이 내게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깨가 결리는 아픔을 못이겨 의자에서 일어났다. 식은땀이 상당했고,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꿈은 꿈이다. 거짓이 섞여 있었다. 나는 어이 없어서 웃었다. 셀리나는 빗 속에서 싸늘하게 죽어있지 않았다. 내 방 내 책상 앞에, 죽은채 의자에 앉아 있었지. 허공을 바라보던 눈과 경직되어 있던 입가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는 걸 알았었다. 칼이 박힌 가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피는 그 다음이었다. 깨진 시계와 쪽지는 그녀 앞 책상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쪽지의 협박은 매우 선명하게, 그녀를 잉크삼아 적혀 있었다.

 각색이 참 짖궂다. 대체 무슨 사실로 그런 드라마를 만드는지.


 "...."


 그러나 난 알고있다. 이 꿈은 내게 주어진 경고이다.

 난, 내 인생에 어떤 누군가를 관여시켜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번 일주일동안 누군가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감사하게도. 또, 미안하게도.

 그녀가 좋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과 현실은 다르다. 또다시 실수할 것인가, 아니면 지혜를 나타낼 것인가. 나 스스로에게 결정하라는 경고의 꿈이었던 것이다.


 "잠의 요정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하하."

 나는 웃었다. 거 참 고마운 일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지가 창가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서재에 책들이 많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마지막 날이다. 짐 정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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