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cil Patrick - 새벽 조용한 새벽

2015. 3. 21.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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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초대장을 보았을 때에는, 내가 정말 이곳에 와도 괜찮은걸까 하고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 이런 '일'은 내가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잘 부탁한다는 말만 하셨다. 

 "...알겠습니다."

 나는 웃었다. 정 그러시다면 난 이 일을 할 뿐이다. 

 사실, 사교 모임은 오랜만이기도 했고. 기뻤다.




 파티 당일 날. 

 어두웠다.

 저택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공작님께서 파티 날을 잘못 잡으신 것이 아닌가 하고 조금 착잡했다. 오전에 길을 걷던 중 하늘을 보며 그런 불길한 예감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것이 맞았던 것이다. 비가, 쉽게 그칠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공기가 눅눅한 건 질색이다.

 12시가 되어 건물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비에 흠뻑 젖고도 남았을 것이다.


 건물 안이 밝은 건 천만 다행이었다. 분위기 상으로도, 기분 상으로도 내게는 밝은 빛이 필요했다. 하루종일 어깨가 무거웠던 이유가 있다. 그러니, 그만큼 푹 쉴수 있는 시간이 내게는 필요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곳에 와야 했으니까. 그러니,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차분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 빛이 그런 역할을 했다.


 사람들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대화한다. 상냥한 웃음소리와 듬직한 저음이 넓은 홀을 울렸다. 달그락 소리에 이어서 달콤한 다과들의 향도 났다. 한 밤중에 이런 것들을 먹게 되는건 참 기쁜 일이다. 낭만있는 일이다.


 나는 이곳에 심부름을 몇번 온 적이 있다. 공작께서 받으셔야 할 편지 몇장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아마 그것은 내 생애에 매우 큰 영광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런 내가 이곳에서 저기 보이는 분들과 이것 저것 이야기 하고 있다니.

 계속 살아볼 일이다. 하하.


 한 사람, 두 사람. 점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한모금 남은 럼주 한 잔을 마셨다. 

 비가 공기를 삼키듯 내렸고, 창가 너머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아마 별관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리라. 그렇다면, 저곳에 지금 누군가가 깨어있다는 뜻일까.

 평소라면 초대받은 영광을 빌어 자유롭게 가봤을 그곳을 오늘은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내일의 날씨가 부디 산뜻하고 맑기를 바란다.


 유독 초대장이 신경쓰이는 밤이다.

 유독 비에 흔들리는 불빛이 신경쓰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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