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로(Gyro) -2

2012. 4. 6.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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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휴대용 슬러시 컵을 든 채로 길을 걸어 나아갔다. 아슬아슬한 곳까지 올라온 핫팬츠 마저 더웠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걸었다. 새하얀 상의는 도시 건물 곳곳에서 부는 선선한 바람에 나풀거리고 덕분에 그 바람이 속으로 들어와 시원했다.

그러나 이런 날 밖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싫다.
자이로도 불평 불만이다.

"금속이 팽창했어. 이대로라면 마찰계 면적 부위에 걸리는 마찰이 0.00153에서 0.0035로 증가한다고. 어서 시원한 곳으로 가자."
"그러지 마. 그만한 증가는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아."

터덜 터덜.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슬러시를 한 모금 마셨다. 가슴주머니에 들어가 출렁 늘어져 있는 자이로는 이리 저리 흔들려 움직인다. 가끔씩 '중심계 이탈!'이라던가, '중립축 궤도 이탈!'이라면서 시끄럽게 소리쳐 댄다. 그런데 이건 뭐 시간 지나면 사라질 소리. 아, 짜증만 증가한다.

목 선을 타고 흐르는 땀이 느껴졌다. 어서 다른 곳이라도 들어가야겠다.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 결합의 강화섬유 육각형 돔. 이 행성은 이제 외부에서 오는 온갖 전자기파를 절반 이상 튕겨내지 않으면 멸망 할 만큼 위태한 지경에 이르렀다. 때문에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 결합의 강화섬유 육각형 돔을 설치 하여 한 도시 한 도시를 보호하게 되었다. 또한 그 도시들을 모은 국가간에도 육각형 돔을 다시 덮었다. 이 속의 모든 대류 현상은 AI라는 하느님이 관리하신다. 대단한 행성이다, 정말.


++

짜잔~
그래서 도착 한 곳은 친구의 집이다.

"할로! 어서와~ 와우! 핫팬츠 봐 ㅋㅋㅋ 너무 야한거 아냐? ㅋㅋ 윗도리에 가려서 안 입은 것 같아!"

만나자 마자 박장대소 하는 나의 친구여. 일단 같이 웃자. 그러려면 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어?

"아, 그렇네. 기다려. 방 청소 하고 있었거든."

조금만 더 더운 곳에서 고생해 줘, 라고 덧붙이는 나의 친구여. 이러지 말아줘. 내가 청소 도와줄게! 들어가게 해 줘!!

"팽창속도가 증가했다!! 마모율이 증가해! 우아!"

자이로도 소리쳤다. 나도 소리칠거야! 내 목소리 알지?
그러자 친구는 머리를 긁적였다. 워낙 공기가 마르고 더운지라 주변이 새하얗게 보인다. 너무 눈 부시다.

"음.. 정 괜찮다면 들어와. 하긴, 손님이 오신다는데 치우지도 않은 내 잘못도 있긴 하지."

정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들어와' 손짓하는 친구. 아아, 자이로. 들어가자.




++

잠깐 자고 일어났다.
밤이 되어버렸다. 자이로는 진작부터 소리치고 있었단다. 왜 안 일어나냐는 거였다. 심야 11시. 집에 가는게 귀찮다. 적당히 어머니께 텔링트윗을 보내고 여기서 자기로 했다.

통풍성 파자마를 빌려 입으니 상의가 왠지 널널했다. 언제나 느끼지만 젠장할!

자이로가 잠들었으니 이젠 안심하고 자도 될 것 같다.
안녕, 하루여!
AI가 돌보는 이 도시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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